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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하반기 해외 성평등 이슈 관련 언론 모니터 보고서

1. 이란 히잡 반대 시위

1) 개요

9월 13일, 이란에서 지도 순찰대(가쉬테 에르셔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22세 쿠르드계 여성 마흐사 아미니(쿠르드 이름 지나 아미니)를 체포했다. 보통 1시간 교육을 받고 풀려나는 게 관례였지만 아미니는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이송됐고 사흘만인 16일 사망한 채 가족에 인계되었다. 유족은 지병이 없던 아미니가 경찰의 가혹행위로 사망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다음날인 9월 17일부터 이란의 10대, 20대 여성들을 주축으로 ‘복장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빠르게 확산하였고 이란 당국은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9월 20일 17세 여성 니카 샤카라미, 9월 22일 16세 여성 사리나 에스마일자데 등 시위 참여 여성의 의문사가 잇따랐고 폭력 진압에 따른 희생자 수가 10월 중순까지 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또한, 2018년 미국의 이란 핵협정 파기 이후 극심한 경제난과 쿠르드 자치 구역 등 탄압받던 국경 지역 소수민족의 반발까지 겹치면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의 반정부 시위로 사태가 번졌다. 그러나 시위가 1달을 넘긴 시점에서도 이란 당국은 강경 진압 기조를 고수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배후”라는 입장까지 내비쳤다. 이에 세계 각국은 이란 시민에 대해 연대로 화답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이란 정부에 “자국민 향한 폭력을 멈추라”라고 공개 비판했고 이란의 국가대표 축구선수부터 프랑스의 여배우들까지 세계 시민들의 연대 표시, 세계 각국에서의 연대 시위도 이어졌다.

이렇듯 이란 히잡 시위가 국제적 이슈로 확대되면서 한국 시민사회도 반응했다. 한국 내 이란인들의 시위에 한국 시민들도 연대했고 언론 보도도 쏟아졌다. 따라서 이란 히잡 시위를 다룬 한국 언론 보도는 우리 시민사회의 인권 의식 수준, 성평등 인식 수준을 가늠할 척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시위가 발생한 9월 17일부터 10월 16일까지 한 달간, 언론진흥재단 언론 보도 빅데이터 서비스인 빅카인즈를 이용하여 ‘이란 히잡 시위’를 언급한 언론 보도 전반을 분석했다. 보도의 분류는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주제별로 구분했다.

2) 이란 현지상황 전달 보도

이란 시위가 시작된 9월 17일부터 10월 16일까지,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이란 히잡 시위’를 언급한 보도는 총 402건으로 해외 여성 인권 이슈로서는 이례적인 수준으로 보도가 많았다. 이는 주요 언론사 50여 개의 보도량으로서 주간지와 인터넷 매체 등 다양한 매체를 포괄하는 포털사이트에서는 보도량이 2000여 건에 달했다. 그만큼 한국 언론이 이란 시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의미다.


▲ <그림1> ‘이란 히잡 시위’ 언급 보도 주제별 구성

(9.17~10.16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이란 히잡 시위’ 언급 보도)


이란 당국 강경 대응 빠르게 전한 언론

총 402건의 보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 한 것은 ‘이란 현지 상황’을 전하는 보도로서 시위의 경위와 전개, 사망자 수 등 시위대의 피해 현황, 이란 당국의 진압 및 대응을 다룬 경우다. 이런 보도가 총 214건으로 53% 절반을 넘었다. 이란 시위는 시시각각 사태가 급변하고 예측이 어려운 데다 접근할 수 없는 탓에 국내 언론은 외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로 인해 주로 외신을 인용해 현지 상황을 전하는 보도가 절반이 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란 현지 상황’ 보도 214건 중 절반인 108건은 이란 당국의 대응을 중심적으로 다뤘다. 이란 정부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시위 참여 시민들과 연대하는 국제 사회에도 폭력적이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했다. 1달간 강경 진압으로 인한 사망자만 2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고 시위대를 “깡패, 강도”에 비유하기도 했으며 시위대의 배후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있다는 음모론까지 거론했다. 시위가 장기화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결정적 이유가 당국 대응에 있는 만큼 관련 현황을 시시각각 보도하는 양상 역시 자연스럽다. 사태 초기에는 한겨레 <이란 ‘히잡 반대’ 시위로 최소 8명 숨져 인터넷 접속도 제한>(9/22)처럼 시위 촉발 직후부터 시작된 이란 당국의 폭력 진압과 그에 따른 시민 피해를 전하는 보도들이 두드러졌다. 대부분은 외신이나 국제 인권단체를 인용하는 보도들이다. 한겨레 보도 역시 인터넷 접속차단 감시단체 ‘넷블록스’, 쿠르다 인권단체 ‘헹가우’ 등을 인용하여 “2019년 11월 시위 당시 이래 가장 심각한 인터넷 접속 제한이 이뤄지고 있다” “당국의 발표보다 더 많은 10명이 시위하다 숨졌다며 이 중 7명은 보안병력에 의해 살해됐다” 등의 현황을 전했다. 이러한 ‘당국의 진압 행태’ 관련 속보성 보도는 사태 내내 이어졌으며 간간이 국민일보 <‘기자가 히잡 안써서’ CNN 인터뷰 취소한 이란 대통령>(9/23) 파이낸셜뉴스 <이란 대통령, '히잡 의문사' 시위에 "슬프지만 폭동은 안돼">(9/29) 중앙일보 <이란 최고지도자 “히잡시위, 분명 정상 아냐 미국 이스라엘의 계획”>(10/3) 등 이란 정부 요인들의 입장을 전하는 보도들도 나왔다.

비판 분석 실종은 아쉬운 점

다만 이란 당국의 대응을 전하는 보도 중 비판적 논조를 찾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이란 당국의 대응을 다룬 사례는 사실상 모두 위와 같은 받아쓰기와 중계 보도였다. 극소수의 비판적 기조를 보인 사례는 한국일보 <133명 죽었는데…'히잡 시위'가 "미국 계획"이라는 이란 최고지도자>(10/3) 정도인데 이 보도도 제목에서 이란 정부 태도의 모순을 암시했을 뿐 기사 내용은 현지 상황 전달이다.

3) 시민 목소리 전달 보도

‘시민의 목소리’를 중점적으로 다룬 보도는 총 84건으로 ‘이란 당국의 대응’을 전한 보도 108건보다 적긴 했으나 차이가 크지 않았다. 모두 넓게 보면 ‘현지 상황’과 관련된 보도라는 점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닌데, 시위에 나선 시민들의 목소리를 중점적으로 전한 보도는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로 사망자 숫자나 시위 확산 양상, 이란 당국의 대응을 전하는 보도는 사태가 급변하기 때문에 속보 또는 발생 기사로 흐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확산 양상과 배경 분석까지 다룬 유의미한 보도

이와 달리 시민들의 목소리는 똑같이 외신을 인용하더라도 시위의 근본적 원인이나 핵심 요구에 있어 메시지에 일관성이 있으므로 우리 언론이 충분히 분석 또는 관점을 제시할 여지가 크다. 실제로 시위 초기 한국일보 <이란 전역에서 히잡 국기 화형식... '성차별 분노' 대폭발>(9/20)과 같이 성차별과 인권 탄압에 대한 저항을 전하던 언론 보도는 반정부 시위로 옮아간 이란 시민들의 목소리를 따라 한겨레 <이란 히잡 시위에 석유·가스 노동자도 합세…정권 흔들까>(10/11) 등 ‘시위 참여 시민 범주의 확대’로 옮아갔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집단의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게 된 배경도 언급하게 됐다. 한겨레 보도는 주로 젊은 여성들로부터 시작된 시위에 석유화학 공장 노동자도 동참하게 됐음을 전하면서 “러시아에 이어 세계 두 번째 천연가스 매장량을 보유한 이란에서 에너지 분야 노동자들까지 반정부 시위에 합세하면서, 이번 사태가 정권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을 덧붙였다. 이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5월 3년 전 이란과 체결했던 이란핵협정(JCPOA)를 일방 파기하면서 이란산 석유의 수입을 금지하는 등의 가혹한 경제 제재 조처를 되살렸다. 이후 이란의 경제 성장률이 곤두박질쳤다. 그에 더해 최근 들어선 소비자 물가가 전년보다 40~50% 급등하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인권과 자유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시위에 에너지 분야 노동자들까지 참여한 모습이어서, 이란 정부에 적잖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라고 반정부 시위로 확대된 이란 국내외적 배경도 짚었다. 단순히 시위 현황, 현지 상황을 속보성으로 옮기는 보도들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으로서 이란 히잡 시위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사례다. 수많은 시민이 희생을 불사하며 기본권을 지키려는 다른 나라의 상황을, 국내 독자들이 휘발성 또는 화제성 이슈로만 소비하지 않으려면 이런 정보가 필요하다.

휘발성, 화제성 이슈를 전하는‘SNS 저널리즘’은 아쉬워

다만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한 보도 중에도 휘발성, 화제성 이슈로 보일 수 있는 보도가 있었다. 84건의 보도 중 10건(12%)의 보도가 ‘붉게 물든 분수대’를 전했는데, 이는 시위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로 추정되는 SNS 영상을 인용하는 사례들이다.

일례로 머니투데이 <영상/하룻밤 새 분수대 물 '핏빛'으로…'히잡 시위' 이란서 무슨 일?>(10/13)는 전형적인 ‘해외토픽’ 형식의 제목을 차용하여 “국가의 부당한 단속을 고발하는 이란 활동가 트위터 계정 '1500타스비르'(1500tasvir)”를 인용했다. 그 내용은 “"익명을 요구한 예술가가 분수를 핏빛으로 물들였다"라며 '피에 잠긴 테헤란'이라는 제목으로 붉게 물든 분수의 사진과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 따르면 테헤란 다네슈 공원, 샤흐르 극장, 파테미 광장, 예술가공원 등의 분수대는 하룻밤 사이에 붉게 물들었다”는 것이다. 이에 머니투데이는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가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으로 촉발한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퍼포먼스라는 해석”이 나오고 이란 당국은 “"이 사진은 완전한 거짓"이라며 도심의 분수대 물이 붉은색으로 변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고 덧붙이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이는 소위 ‘SNS 저널리즘’의 전형으로서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도 전에 SNS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기 바쁘다 보니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국가권력에 맞선 행동까지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쯤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보도의 결론은 ‘붉게 물든 분수대는 거짓일 수도 있다’는 다소 무의미한 가십에 가깝다.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국내 언론의 한계로 다른 보도들도 모두 ‘붉게 물든 분수대’가 정확히 저항 퍼포먼스인지 확언하지 못했다. 물론 해당 SNS 게시글에 사망한 아미니를 해시태그로 달았으므로 저항 행위일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국내 언론 중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사례는 없다. 그렇다면 보도를 자제하거나 최소한 이미 확인된 ‘시민들의 저항 행위’들을 덧붙여 독자들이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4) 국제사회 반응 보도

이란 히잡 시위 보도 중에는 ‘국제 사회 대응’을 다룬 사례도 많았다. 총 67건, 17%로서 전 세계 시민들의 연대는 물론 각국 정부의 이란 당국 규탄으로 이어진 이번 시위의 성격을 잘 보여줬다. 아시아경제 <바이든, '히잡 시위' 진압 비판 "이란, 자국민에 폭력 멈춰야">(10/15) 등 각국 대통령의 규탄 발언부터 조선일보 <이란 ‘히잡시위’ 강경진압에... 佛 네덜란드, 자국민 철수령>(10/9)와 같은 시위로 인한 자국민의 실질적 피해를 막기 위한 대처까지 다양한 보도가 나왔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도 시위에 나서며 적극적인 연대를 표한 시민들의 목소리도 주목을 받았는데 문화일보 <이란 ‘히잡 의문사’에 시위 격화 런던 파리 LA 밴쿠버에서도 시위>(9/27) 등의 보도가 국내에도 소식을 전하며 한국 국민들과 한국 내 이란인들의 연대 활동에 일조했다.

유명인 중심의 휘발성 해외토픽 보도 경향 아쉬워

다만, 여기서도 휘발성, 가십성으로 흐를 수 있는 보도가 많아 아쉬웠다. 67건의 보도 중 유난히 보도가 많았던 이슈는 세계 유명 배우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며 연대를 표했다는 뉴스였다. ‘배우’를 언급한 보도가 ‘국제 사회 대응’ 67건 중 27건, 40%에 이르렀다. 보편적 세계 시민들의 연대 목소리보다는 ‘유명인의 특별한 행위’에 언론이 초점을 뒀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중 일부는 전형적인 ‘해외토픽 뉴스’로서 휘발성을 띄었다. 일례로 OBS <오늘의 세계/줄리에뜨 비노쉬가 머리카락 자른 사연>(10/7)은‘오늘의 세계’라는 코너에서 4개의 해외 단신 중 하나로 ‘머리카락을 자른 유명 배우’를 다뤘다. 다른 뉴스는 ‘사람보다 큰 꽃다발 제작 성공’과 같은 ‘해외토픽 뉴스’였는데 그와 비슷한 소식으로 ‘이란 시위 연대’를 끼워 넣은 것이다. 보도 내용 역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 마리옹 코티야르와 줄리엣 비노쉬가 벌인 퍼포먼스”를 영상과 함께 짧게 전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러한 시각적 퍼포먼스가 이란 여성들의 어려움을 주목하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학자의 코멘트를 딱 한 마디 달았으나 이란 시위의 의미나 연대의 필요성을 피력하기엔 부족했다. 오히려 흥미 위주의 다른 ‘단신 해외토픽’과 뒤섞여 이란 시위 연대의 의미를 희석할 우려가 있는 사례다.

미국 대기업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를 언급한 보도도 19건으로 67건의 ‘국제 사회 대응’ 보도 중 28%로 비중이 컸다. 즉 우리 언론은 ‘국제 사회 대응’ 보도 중 절반 이상을 ‘유명인들의 행보’에 할애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의 경우 조선 [中 “머스크를 경계하라”… 독재정권 습격한 ‘스타링크’]10.6와 같은 보도로 거론되었는데 모두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저궤도 인공위성 기반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로 인터넷을 차단한 이란 당국에 대응해 이란 시민들을 도왔다는 내용이다. 전달할 가치가 있는 뉴스이나 ‘스타링크’ 가동에 필수적인 안테나가 정작 이란에 반입 불가하여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실제 시위 시민들에게 도움이 됐는지는 다루지 않았다는 점, 일론 머스크 한 사람을 과도하게 칭송하는 분위기로 흘러 자칫 ‘유명인 가십 보도’로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쉬운 보도 양상이다.

5) 의견기사

적절한 비판 담은 의견기사 대부분

1달간 한국 언론의 이란 히잡 시위 보도 대부분은 앞서 살펴본 ‘현지 상황’, ‘시민 목소리’, ‘국제 사회 대응’으로 채워졌다. 총 402건의 보도 중 세 가지 주제 분류의 보도가 91%에 이르렀다. 해당 뉴스들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으나 시민들이 실제로 목숨을 잃어가며 복장의 자유 등 기본권 투쟁부터 소수민족의 생존권 투쟁에 나섰다는 점에서 분석과 관점이 부족했다.

1달간 의견기사가 19건에 그쳤다는 사실에서도 한국 언론의 구체적, 분석적 태도가 부족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의견 보도는 모두 이란 당국에 비판적이고 이란 시민들을 성원하는 내용이라 아무 문제가 없다.

‘옥에 티’ 의견기사 1건

다만 딱 1건의 보도에서 이란 시위를 두고 국내 정치에 악용하려는 듯한 의도가 엿보였다. 조선일보 <민족 앞세워 윽박지르던 ‘反日 윤리경찰’… ‘히잡 강요’와 무엇이 다른가>(10/1)는 1979년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으로 근대 국가가 종교 국가로 퇴행한 이란의 역사를 ‘근대화의 역설’로 규정하고는 “근대화의 역설을 통해 성장하고,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잡은 무능력자들이, 엄숙주의를 무기 삼아 국민을 윽박지르는 현상.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 그리 드물지 않다”라고 운을 띄웠다. 이어서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졌던 일”이라더니 “지난 정권 당시 운동권 출신 집권 세력이 벌였던 반일 선동이 대표적이다. 그런 선동에 놀아난 일부 국민은 스스로 ‘반일 윤리 경찰’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일본 브랜드 옷을 입는다고, 일본 자동차를 탄다고, 일본 여행을 가서 소셜미디어(SNS)에 인증샷을 올린다고 서로 비난하며 허둥지둥 감추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비록 정권은 잃었지만, 그 엄숙한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력은 그리 약해지지 않았다. 도덕과 민족을 앞세워 우리를 윽박지를 기회를 노리는 중”이라 주장했다. ‘지난 정권 집권 세력의 반일 선동’과 ‘그런 선동에 놀아는 일부 국민’들이 히잡으로 이란 시민들을 탄압하는 이란 정부와 같다는 논리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실과 달라 주관적인 상상에 가깝다. 지난 정권이 전임 대통령 탄핵과 통상적인 선거를 거쳐 ‘집권’한 것은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과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과 절차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 범죄를 인정도 사죄도 하지 않는 일본을 비판하고 ‘불매운동’을 벌인 것은 ‘집권 세력’이 ‘선동’하여 벌어진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여론 현상이다. 오히려 그러한 입장 표명을 ‘히잡 안 썼다고 시민을 죽이는 이란 윤리 경찰이다’라고 윽박지르고 비방하는 것이 근대화의 주요 가치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는 ‘근대화의 역설’이다. 전혀 무관한 한국 국내 정치 상황에 이란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나선 시위를 악용하는 것은 이란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6) 분석 기사

분석 보도량 부족해 ‘성차별’ 언급도 소수

의견기사와 더불어 구체적인 분석 보도 역시 보도량이 부족했다. 시위의 역사적 배경, 근본적 원인, 국제적 의미와 영향 등 다방면의 의미를 독자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으나 대부분의 보도가 시위 전개 양상과 이란 정부의 탄압, 해외 반응 등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분석’을 담은 보도는 402건 중 16건, 4%에 그쳤다. ‘분석 보도’의 부족은 ‘여성의 복장 탄압’에서 촉발한 시위를 보도하면서도 정작 ‘성평등’ ‘성차별’은 거론하지 않는 모순적 양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402건의 보도 중 ‘성평등’은 단 1건, ‘성차별’은 고작 2건만 언급했다. 그나마 ‘여성 인권’은 37건 언급했으나 이마저도 다양한 시위의 원인을 나열하던 중 단순 언급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동아일보 <이란, 이슬람 혁명 후 경제난-양극화… 의문사 분노, 정권퇴진 번져/글로벌 포커스>(10/15)의 경우 “경제난 속 양극화 극심” 등 시위의 여러 배경을 꼽던 중 “여성 인권 억압하는 현 대통령”을 함께 지목했으나 특별히 ‘여성 차별’이나 ‘성평등’ 관점에서 ‘여성 인권’을 거론한 게 아니었다. 이는 한국 언론 보도 대부분이 현지 상황과 국제적 영향에 몰두하다보니 여성 인권에서 촉발된 시위를 ‘저항과 폭력 진압’이라는 극적 사건 자체로만 전하거나 ‘하메네이 정권 퇴진’과 같은 ‘정치적 이슈’로만 다뤘음을 방증한다.

보도량은 적지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한 분석기사 돋보여

보도량은 적지만 16건의 사례 모두 양질의 분석을 담고 있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매체 성향 가릴 것 없이 좋은 보도가 나왔다. 문화일보 [여권과 정권의 격돌 이란에 타오른 인권>(10/6)은 “‘146개국 중 143번째.’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머리에 천이 둘린 이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젠더 격차 현주소다. 단순히 히잡을 착용한 것이 아니라, 무려 43년 동안 남성들과 종교 권력으로부터 켜켜이 자의식 해체를 당해왔다고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라며 히잡 시위의 기본적 의미를 짚은 뒤 “만 9세 이상이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1981년부터 대외 활동을 제한하는 명목 아래 축구장 출입도 금지했지만 41년만인 지난달 관람 허가” “일부다처제, 조혼 문화도 합법” 등 이란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구체적, 객관적으로 기술했다. 이어서 이란 내 반정부 시위의 역사를 덧붙여 이번 시위의 맥락적 이해를 도왔다. “이란 내 시위는 2009년 ‘녹색 운동’ 시위 이후 최대 규모” “녹색 운동 시위가 부정 선거 의혹에서 불거진 민주화 시위고, 보안군과 시위대가 대규모로 무력 충돌했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란의 풍속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 폐지 주장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퇴진을 겨냥한 국내외 연대로 번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번 시위가 유독 ‘반정부 시위’와 ‘국내외 연대’로 확산하여 “빈부, 학력, 지역에 상관없이 이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이유”로는 “그간 축적된 경제 불황·관료 부패 등 사회적 불만이 불을 키웠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성직자 집권 체제가 시작되며 무분별하게 자행된 사생활 침해”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 원인을 꼽기도 했다. 이 기사는 시위의 결과를 예측하기도 했는데 단순히 ‘시위대의 승리’ 여부가 아니라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의 뿌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위가 장기화하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해 최저 투표율 속 당선된 이후 이렇다 할 정책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 등 시위가 진압된다고 해도 이어질 정치적 여파 중심의 분석을 내놨다.

상기 문화일보 사례가 종합적인 분석에 있어 모범적 사례라면 이란 체제의 대내외적, 지정학적 배경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한겨레 보도도 주목할 만하다. 한겨레 <‘관용과 감시’ 모순의 이란…히잡 시위도 그렇게 시작됐다>(10/1)는 이란이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중대한 기로에” 선 배경으로 “역사상 가장 먼저 제국을 성립시킨 이란의 지정학에서 2개의 주요 과제”였던 “내부의 단속과 외부로의 팽창”을 중심으로 한 분석을 제시했다. 먼저 ‘내부 단속’의 체제로는 “광대하고 높은 산악지대”라는 “이란의 지정학”으로 인해 “관용과 감시라는 두 가지 시스템을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산악지대가 만들어낸 고립된 지역에서 발원한 다양한 부족과 종족의 융화와 단결을 위해서는 그들의 독자성과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용 정책이 필요”했고 동시에 “수많은 부족과 종족, 더 나아가 수많은 이방 민족을 품은 제국으로서는 이들을 단속할 내부 기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이러한 체제의 두 축이 현대 이란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져 주변국인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갈등에 영향을 줬다면서 결론적으로는 최강대국이자 중동 갈등의 배후로 작용했던 미국이 이란에 미친 영향도 크다고 봤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파기 및 대이란 제재 강화는 “중동 전역으로의 이란 세력 확장은 이란에 내재된 본질이라고 보는 쪽들의 시각이 작용한 것”으로서 “2020년 1월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암살 사건과 11월의 이란 핵 과학자 모흐센 파흐리자데 암살 사건 등 이란에 대한 사보타주 공작과 테러 공격이 가해졌”으며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이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협정 파기 이후 잦아지는 시위 등이 공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란 정부의 태도의 근본 원인이라 지적했다. “이란에 내재한 관용과 감시, 외부 확장 사이의 갈등과 긴장 관계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현재 이란에서 벌어지는 히잡 시위와 핵협상 교착”이라는 결론으로 이 기사는 마무리된다. 보통 이란 시위에 대한 분석이 이란의 여성 인권 탄압에서 시작하는 것과 달리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의 지정학적 특성과 그에 따른 미국과의 관계라는 더 거시적인 안목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외에도 많은 매체에서 여성 인권, 정치 체제, 경제 상황 등 다방면에서 이란 히잡 시위를 바라보는 분석 보도들이 나왔다. 경제지에서도 머니투데이 <독재자에게 죽음을…시위 뒤 숨겨진 경제난·세속화 열망>(10/9)과 같은 사례가 있었다. 머니투데이는 국립외교원을 인용하여 이란 히잡 시위의 배경을 “경제난 심화와 무능한 정부에 대한 국민적 불만”, “이란 정부의 보수 강경정책”, “좌절과 박탈감에서 고취된 국민들의 저항의식” 3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여기에 미국의 일방적 핵협상 파기와 “소수민족과 국가 간 갈등도 고조되는 양상”도 언급해 간략하게라도 관련된 대부분의 요소를 언급하려 노력했다.

2. 인도 대법원, 미혼 여성도 24주 이내 낙태 허용 전향적 판결

1) 개요

9월 29일, 인도 대법원이 임신 20~24주 사이 미혼 여성에 대해 기혼자와 동등하게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판결했다. 공교롭게도 ‘세계 임신 중지의 날’, 여성 인권에 보수적이라 평가받는 국가에서 전향적인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인도는 그동안 결혼 관계와 성폭력 범죄자에 한정해 임신 중지를 허용했다. 1971년 ‘의학적 임신중절법’을 도입해 임신 중지 권리를 처음으로 합법화했고 2021년 법을 개정해 임신 20~24주까지 대상을 확대하긴 했으나 여전히 결혼 및 이혼 여성, 장애인, 미성년자, 성폭력 임신 등으로 제한을 두고 있었다. 이번 판결로 사실상 모든 여성에게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게 됐다. 인도 대법원은 “임신한 미혼 여성이 24주까지 낙태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기혼 여성의 치료를 허용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밝혔고 “남편이 강제한 성행위도 낙태 사유 중 하나인 강간으로 볼 수 있다”라며 그간 인정되지 않았던 ‘부부간 강간’ 개념도 공식화했다. 판결에 참여한 챈드라추드 판사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강제로 출산을 하게 된다면 국가는 여성의 신체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대한 자율성을 박탈하고 그들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 될 것”이라며 임신 중지 권리가 여성의 신체적 자기 결정권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임을 짚기도 했다.

인도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은 한국의 상황과 크게 대조된다. 한국은 형법상 범죄였던 ‘낙태죄’에 헌법재판소가 2019년에야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으나 그 이후 지금까지 모자보건법 등 후속 입법을 국회가 방치하여 여전히 임신 중지의 합법성 여부마저 모호한 실정이다. 임신 중지 시술이 가능한 임신 기간 관련 논쟁이 첨예하여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한국의 상황에서 비록 임신 20~24주로 임신 주수가 정해져 있으나 일찍이 임신 중지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고 이제는 모든 여성의 권리로 인정한 인도 판결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참고할 사례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도 법원의 판결을 한국 언론이 보도하는지, 보도한다면 어떻게 관점으로 다루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보도 분석

보도량 매우 적어

인도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9월 2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약 1달간 포털사이트 네이버 뉴스 검색 기준 ‘인도 낙태 판결’ 키워드를 언급한 보도는 총 16건에 불과했다. 주요 54개 매체 보도만 제공하는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으로는 7건에 그쳤다. 우리 언론의 국제 뉴스 역량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관심조차 없었다고 할 수 있는 수치다.

보도들은 모두 인도 대법원의 판결을 ‘세기의 판결’ ‘진보적 판결’ ‘기념비적 판결’로 치켜세우면서 판결 내용을 전했다. 문제는 딱 거기서 멈춘 보도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국민일보 <인도, 미혼여성 낙태권·부부 강간 인정…“진보적 판결”>(10/1)은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인권유린이 일어나는 인도 상황에 비춰볼 때 기념비적인 판결로 평가된다.”라면서 앞서 살펴본 판결 내용과 인도 판사의 발언을 받아썼다. 대부분의 보도가 이 수준에 그쳤다는 점은 우리 언론의 인권 관련 시각에 대해 여러 시사점을 내포한다. ‘스토킹 살인사건’과 같은 국내 강력 사건에서는 스토킹 처벌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의 개정 방향부터 스토킹을 포함한 ‘젠더 폭력’ 논의까지 나아가며 수많은 보도를 쏟아내는 우리 언론이 임신 중지 권리라는 여성 인권의 또 다른 핵심축은 사실상 외면하는 것이다. 여성 인권 전반에 있어 아직 언론의 인식 수준이나 감수성이 깊지 않다는 의미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16건의 보도 중 그나마 구체적으로 판결의 의미까지 거론한 보도는 2건뿐이며 이 중에서도 한국의 상황을 언급한 것은 처음으로 인도 판결 소식을 전한 세이프타임즈 <단독/인도 미혼 여성도 '24주 낙태' 허용 … 기혼자와 동일 적용>(9/30)뿐이다. 세이프타임즈는 판결 내용과 더불어“매일 8여 명의 인도 여성들은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인해 사망” “2007~2011년 인도에서 시행된 낙태 가운데 67%는 안전하지 않은 것” “원인 중 하나는 미혼·빈곤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안전하지 않거나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 등 극히 일부의 임신 중지 권리만 인정해온 인도 사회의 인권 침해 실태를 객관적 수치로 보여줬다. 또한 “한국은 모자보건법에 따라 임신 24주 이내의 태아에 대해 △우생학적 △유전학적 신체 △정신질환·전염성 질환·강간 △준강간·근친상간이나 임신의 지속이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때에만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약물이나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낙태를 시술한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며 한국 현행법을 덧붙여 독자가 인도와 비교해볼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한국이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낙태가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나 모자보건법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그러한 현행법이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아쉽기는 하나 한국 사례를 붙인 보도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모범적 사례다. 한국 현행법을 대조하여 인도가 비록 임신 24주까지만 임신 중지를 허용하는 점에서 한국과 유사하지만, 한국과 달리 사실상 모든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3. 미국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후 상황

1) 개요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 중지 권리를 보장한 1973년의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을 파기하면서 임신 중지를 각 주법에 따라 불법화할 수도록 길을 열었다. 퇴행적 판결에 정치적, 사회적 파장이 이어졌다. 임신 중지를 연방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화하는 움직임과 이를 막기 위한 대응이 중앙정부, 각 주 정부별로 제각각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 직후인 7월 초 행정부가 임신 중지 의료 서비스 접근을 도울 방법을 찾으라는 첫 번째 행정명령에 이어 8월 3일, 보건복지부가 임신 중지를 위해 다른 주로 이동하는 환자를 지원하게 하는 행정명령에 사인했다. 8월 2일, 대표적인 공화당 강세 지역인 캔자스주에서는 예비 선거 투표를 하며 ‘주 헌법 개정을 통한 임신중지권 폐기’ 여부도 함께 표결에 부쳤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유권자 59%가 반대하며 정파성과 무관하게 여성 인권 옹호 여론이 우세했고 결국 주 헌법 개정을 무산시킨 것이다.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처음으로 주 차원의 투표로 임신중단권 관련 유권자 표심이 드러난 사례로서 의미가 컸다. 7월 CNN 여론조사에서 미국 전체 유권자 중 임신중지권 옹호를 택한 비중이 63%로 반대 37%를 압도하는 결과도 있었다.

반면 실제로 임신 중지 금지법이 통과된 주도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인디애나주에서 처음으로 ‘임신중지 불법화’가 현실화했다. 8월 5일 에릭 홀콤 인디애나 주지사가 대부분의 임신 중지를 금하는 주 법안에 서명하여 9월 15일부터 시행됐다. 심지어 해당 법안은 인디애나주 상하원을 모두 압도적 표차로 통과했다. 인디애나주는 이로써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10주 이내의 경우, 산모 생명과 건강 보호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태아가 치명적 기형인 경우만을 제외하고 모든 임신 중지를 금하게 됐다. 더구나 그러한 예외의 경우에도 기존의 클리닉은 모두 임신 중지 시술 면허를 박탈당했으며 병원과 외래진료센터에서만 가능하도록 법이 개정됐다.

주마다 빠르게 임신 중지 금지 여부가 달라지고 중앙정부에서는 권리 보장을 외치면서 시민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대통령이 잇따라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으나 최종적으로는 의회가 임신 중지 보장 법안을 다시 만들어 통과시켜야 하므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마저 불투명하여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판결’ 이후 4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향후 미국의 임신 중지 권리 보장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2) 캔자스주 임신중지 관련 보도 분석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판결’ 이후 미국의 주별 임신 중지 권리 관련 대표적 이슈로는 캔자스주의 임신 중지권 폐기 법 개정 투표와 인디애나주의 임신 중지 불법화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 논란으로 번진 미국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판결’은 한국 언론에서도 보도가 많아 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 기준 6월 24일부터 8월 7일까지 ‘로 대 웨이드 판결’ 언급 보도량만 399건에 달한 바 있다. 이후의 상황도 한국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지, 또 보도한다면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상기 두 사건 관련 보도를 살펴보았다.

‘캔자스주 임신 중지’는 포털사이트 보도로도 15건에 불과

‘캔자스주 임신 중지’를 언급한 보도는 포털 네이버 뉴스 검색 기준 8월 3일부터 10월 27일까지 15건이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 나온 예상외의 결과였음에도 보도량은 많지 않았으며 보도 내용도 모두 단순 전달에 가까웠다.

가장 처음 나온 보도 경향신문 <“임신 중단 금지는 종교적 자유 침해” 플로리다주 고소한 성직자들>(8/3)는 뉴욕타임스를 인용해 “플로리다에서 유대교, 기독교, 성공회, 유니테리언 보편주의, 티베트 불교 등 5개 종교 성직자 7명이 주 정부를 상대로 임신중단 금지법에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했다”라고 전했다. “플로리다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난달 임신 15주 이후 임신 중단을 제한하는 법을 발효”했고 “플로리다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 강력한 임신 중단 금지법을 시행” 중인데 이례적으로 종교인들이 ‘종교적 자유에 대한 헌법상의 권리’를 위반했다며 소를 제기한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 캔자스주에서는 유권자들이 주민투표를 통해 임신 중단권 보호를 삭제하려는 주 헌법 개정을 무산시켰다”라는 소식을 덧붙였다. 이 두 가지 소식을 전하며 종교인들의 ‘임신 중지 금지’ 반대 의사 표명과 캔자스주 유권자의 임신중지권 옹호 투표가 모두 이례적이라는 점, “이번 투표는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처음으로 유권자가 주 차원의 투표를 통해 임신중단권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관심이 쏠렸다”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분석이나 평가를 더하지 않았다. 다른 보도들도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다.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 방점을 찍은 보도

다만 캔자스주의 투표가 중간선거의 예비 투표 과정에서 이뤄졌고 임신중지권이 11월 미국 중간 선거의 주요 쟁점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에 15건의 보도 모두 ‘중간선거에의 영향’에 주목했다는 공통점이 눈에 띈다. 상기 경향신문도 “이번 캔자스주의 투표 결과가 11월 중간선거에서 지지층을 투표소로 끌어내는 동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민주당에 희망적인 결과”라는 로이터통신의 ‘평가’를 덧붙였다.

다른 보도들도 캔자스주 투표 결과가 중간선거에 불리한 판세였던 민주당의 호재라는 점을 언급했는데 보도의 초점을 중간선거에 두고 임신중지권을 다룬 사례들도 있다. 한국일보 <미국서 임신중지 판결 '심판론' 커지나… 여성유권자 등록 '쑥'>(8.25)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권리를 뒤집는 판결을 내린 이후 일부 주(州)에서 여성 신규 유권자 등록이 급증”한다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성 표심’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실시된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 역시 이전보다 상승하면서 임신중절 이슈가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라고 짚었다. 그러한 판세 변화의 사례로서 캔자스주 임신중지권 폐기 여부 투표 결과를 덧붙이면서 “이 투표는 유권자에게 임신중지권 찬반을 물은 첫 투표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평했다.

한겨레 <내 인기 떨어질라…민주는 바이든, 공화는 대법 판결 거리두기>(9/13)는 조금 더 중간선거를 중점적으로 다룬 사례로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선거 전략을 종합하는 가운데 임신중지권 관련 태도를 거론했다. “11월8일에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일부 민주당 후보들은 자당 소속인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사진이 찍히는 것을 피하고, 일부 공화당 후보들은 당의 기존 노선인 임신중지 반대와 선을 긋고 나섰다”는 것이다. “공화당 후보들은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부정하면서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파기한 판결의 역풍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워싱턴주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 티퍼니 스마일 리가 “‘100% 임신중지에 반대한다’더니 지난주 광고에서는 ‘임신중지에 반대하지만 연방 전체 차원에서 금지하는 것은 반대한다’라며 태도를 바꿨다”는 사례를 덧붙이기도 했다. 한겨레는 보도 말미에 공화당 후보들의 이러한 전략이 “이 문제가 중간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라면서 “지난달 보수적인 지역인 캔자스주에서 임신중지권 보호를 주 헌법에서 삭제하는 안건이 주민투표에서 61%의 반대로 부결된 게 공화당 후보들의 위기의식을 키웠다”고 덧붙였다.

3) 인디애나주 임신중지 관련 보도 분석

캔자스주의 달리 연방대법원 판결 이후 처음으로 임신중지 금지법을 도입, 시행한 인디애나주 사례는 총 7건에 그쳤다. 보도 양상은 외신 기반의 단순 전달과 미국 중간선거에의 영향을 전하는 수준으로 상기 캔자스주 사례 관련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9년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입법 공백으로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위법’이 될 수는 있는 모호한 상태의 한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미국의 주별 상황 관련 보도는 매우 소수였으나 충분히 참고가 될만 한 정보를 담았다. 다만 모든 보도가 중간선거와의 관련성, 즉 중간선거 판세나 표심, 그에 따른 양당의 전략 중심으로만 구성된 사실은 매우 아쉽다. 물론 중간선거의 주요 쟁점으로서의 의미도 크지만 캔자스주의 인디애나주의 상반된 현실은 ‘로 대 웨이드 판례 파기 판결’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연장선에 있으며 그 자체로 임신중지권, 즉 여성 기본권과 직결된 사안이다. 중간선거와 별개로 인권 차원에서의 의미 분석과 사회적 파급을 톺아보는 보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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