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라면형제'는 오보?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이 보고서는 오마이뉴스 연재 시리즈 '김언경의 미디어안경'에도 게재되었습니다.]


2일 발행된 <뉴스타파> '라면 형제로 불린 사건 - 110일의 기록'을 봤다. 2020년 인천 미추홀구 화재 사건 뒷이야기를 다룬 보도는 우리에게 인천 미추홀구 화재 사건이라기보다 '라면형제 사건'으로 인식돼있다. <뉴스타파>는 기존 언론보도 비평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사건 관련 기록을 입수해 분석하고 형제 엄마를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를 짚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언론으로 인해 주요하게 바라보았다. 많은 시민이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성원을 보냈다. 정치권도 앞다퉈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입법 활동을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마저 국무회의에서 "조사 인력을 늘려 아동학대 사례를 폭넓게 파악하는 등 각별한 대책을 세워달라. 상황이 해소될 때까지 강제로 아동을 보호하는 조치를 포함해 제도적 보완 방안도 찾아달라"라고 지시했다.


라면이 아니었다?

'배가 고파서 라면을 먹으려다가 불이 났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열쇠였다. 그러나 2020년 12월 10일 경찰이 발표한 화재 원인은 라면이 아니라 불장난이었다. 형이 주방 가스레인지를 켜둔 상태에서 휴지를 가까이 갖다대는 놀이를 했고 그 불씨가 큰불로 이어진 것이다.


첫 보도는 <연합뉴스>가 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는 2020년 9월 14일 발생했고 <연합뉴스>는 9월 15일 오전에 '부모 부재중에 어린 형제끼리 음식 조리하다 불... 화상 입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제목과 내용에는 '라면'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이후 <경인일보>가 '[단독] 라면 끓이던 형제 '날벼락' 코로나 시대의 비극'이라는 기사를 온라인에 업로드하고 9월 16일 자 조간신문 1면 머리기사로 주요하게 보도했다. 제목과 본문에서 모두 라면이 언급된 최초의 기사이다.


라면이 어디서 불쑥 튀어나왔을까? <미디어오늘>은 2020년 12월 11일 '라면형제 화재사건, 경찰 발표 후 오보 논란 왜?'에서 '라면'의 출처가 소방 당국이라고 했다. 실제 <경인일보> 첫 보도에서는 "소방당국은 아이들이 라면을 끓이던 중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합동 감식을 진행하기로 했다"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문준규 인천미추홀경찰서 형사과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에서 라면 끓이다가 불난 거 아니라고 처음부터 이야기했는데 언론에서 라면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라고 따지듯 말한다. 기자는 "그럼 처음에 라면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라고 물었고, 형사과장은 "그건 모르죠. 언론에서 만들었죠.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라고 답했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화재 진압을 했던 소방당국이 가스레인지 부근에서 불이 났다고 말했고 음식 조리 중에 화재가 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다면 어떤 단정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경인일보>만 혼나면 다 되나


<경인일보>만 탓하면 되는 걸까? <경인일보> 보도 이후 모든 언론이 이 사건을 '라면 형제 사건'으로 명명했다. 그 어떤 언론도 라면이 아니었다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이나 규모, 종합지·특수지 등 구분 없이 많은 언론이 '라면'을 확인 없이 받아썼다.


<경인일보> 측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화재 원인이 바뀌어도 문제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경인일보>는 이 사건을 "단지 화재 원인에 대한 경찰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사고의 본질과 의미가 훼손돼선 안 된다"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경인일보>가 지역 화재를 단순 화재로 흘려버리지 않고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주요한 사안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건 높이 평가한다. 그 '공'을 인정 받아 여러 '기자상'으로 받았다면 그만큼 '라면'이라는 키워드를 최초로 언급한 '과' 역시 사과해야 한다. 사건이 일파만파 여론화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라면'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보도 이후 그 어떤 언론도 화재 원인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썼다.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공동 책임이며, 특히 '라면형제'라는 표현은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


'라면형제' 오보보다 선정적 언론보도가 문제


<뉴스타파> 보도를 보면서 아이들이 라면을 끓이려다가 불이 났는지, 불장난을 하다가 불이 났는지를 따지는 건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언론은 이번 사건을 두고 사회 안전망이 부재하고 아동방임 및 학대에 대한 대응체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사회적 참사라는 뜻이다.


하지만 언론은 동시에 형제의 엄마를 탓하고 아이들의 비참함을 부각하느라 바빴다. 아이들과 함께 있지 않았던 엄마, 며칠씩 집을 비우고 아이들을 방임한 엄마, 이미 여러 차례 아동학대로 신고받은 엄마, 장례식장에도 나타나지 않은 엄마.

언론은 편의점 CCTV 화면 속에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아이들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김밥을 사갔다는 증언을 인터뷰했다. <뉴스타파> 인터뷰에 응한 사회복지사들은 이 보도를 두고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서 받게 되는 낙인감이나 그 상처나. 저는 오히려 그게 더 학대 같아 보였거든요. 아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고 고통스러울까"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라면형제' 같은 표현을 고민해야 한다. 모든 여성이 사치를 일삼는다는 '김치녀'라는 표현, 모든 엄마들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다는 '맘충'이라는 표현이 문제적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이처럼 부정적 행위와 그의 사회적 소수자성을 결합시키는 건 혐오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상하게 '라면형제'나 '내복아이'에 대해서 둔감했다. 뭐든지 단정적으로 줄여서 표현하는 것이 관행이 돼버린 분위기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모든 아이를 부정적인 행태로 일반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린이와 관련된 사건의 특징을 부각한 것이므로 혐오표현이 아니라는 인식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수면내시경 시술 중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여성을 '대장내시경녀'라고 한 것을 두고 야만적이라고 비판했다.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어떤 피해자를 묘사할 때 대상을 무시하고 낙인찍는 표현이 야만적이며 반인권적이기 때문에 비판한 게 아닌가.


'라면형제'나 '내복아이' 같은 표현도 그 피해자와 가족에게는 일종의 낙인이 될 것이다. 이들은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 단정적으로 말한 그 표현의 굴레를 못 벗을 가능성이 높다. 언론의 이와 같은 사건명 붙이기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또한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사건명을 사용하는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한다. 툭하면 CCTV를 뒤져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가 부끄러워할 수도 있는 모습을 부각하는 행태도 즉각 중단돼야 마땅하다.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비극

"작은 애가 죽었는데 죽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 다 다르게 죽는 꿈을 꾼다."


둘째 아이가 죽고 나서 비로소 상담을 받은 엄마의 상담기록에 있는 말이라고 한다. 엄마는 간신히 의사 표현을 했던 둘째 아이(이후 사망)에게 모두 엄마 탓이라고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취재진이 나중에 아이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으냐고 묻자 미안하다고 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의 책임을 분명히 알고 있고 대가를 고통스럽게 치르고 있다.


<뉴스타파>는 형제의 엄마가 어린시절 부모의 방임과 폭력을 당하고,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폭력과 학대를 받았음을 전했다. 그는 일생 어떤 제도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2015년에 집을 나간 남편과 이혼한 이후에도 우울증으로 아이들을 방임했다. 그가 아동학대 혐의로 세 차례 신고되자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최장 1년간 피해 아동을 아동복지시설에 위탁해 달라"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청구했다.


2020년 5월이었다. 이때라도 빠르게 이들 가정에 지원이 이루어졌더라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형제의 엄마는 자살 시도를 한 전력이 있으며, 집에 있다가는 죽을까봐 자꾸 집을 나갔다고 했다. 경찰 조사 결과, 8월 15일부터 화재 사고 당일인 9월 14일까지 총 14회나 집을 비웠으며, 이틀간 집을 비운 경우도 세 차례나 확인됐다고 한다.


법원은 석 달이 지난 8월 27일에 "피해아동과 친모 모두에게 상담교육을 받는 보호처분 결정을 내린다"는 결정을 내렸다. 9월 14일 화재가 일어나지 전까지 엄마와 아이는 단 한 번도 상담을 받지 못했다. 인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뉴스타파>의 취재에 공식적으로 응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앞에 대기자가 많아서 기다려야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이런 전문 상담을 하고 교육할 인력이 부족한 것은 분명하며, 이는 예산 부족이고 시스템 부재이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서는 '엄마'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몰아가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가정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는 사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은 엄마가 되고, 자신의 아이를 키우면서 아동방임 및 학대의 가해자가 돼가고 있다. 엄벌과 격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아동과 가정을 어떻게 지원할지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조회수 30회댓글 0개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