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법 해외사례 팩트체크 24
미국 뉴욕은 31개 젠더를 원하는대로
선택할 수 있어서 문제다?
1. 주장
1) 진평연 <포괄적 차별금지법,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단행본)
2016년에 미국 뉴욕시 인권위원회는 31개의 젠더를 승인하였고, 2018년에 뉴욕시는 제3의 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2019년 1월 1일부터 출생증명서에 F(여성), M(남성)과 함께 X(제3의 성)를 선택할 수 있게 하였다.
미국 뉴욕주 뉴욕시 의회는 2002년에 트랜스젠더 권리 장전(The Transgender Rights Bill)153)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뉴욕시 인권조례(The New York City Human Rights Law)를 개정하여 젠더에 따른 보호 범위를 확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후, ‘뉴욕시 인권위원회는 개정된 조례에 따라 젠더(성별)정체성·젠더 표현과 관련하여 뉴욕시 인권조례에 대한 법집행 기준을 제정하였다.’ 젠더정체성 또는 젠더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에 관한 뉴욕시 인권위원회 법집행 안내서‘는 젠더와 관련된 용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 ‘시스젠더’란 출생 시에 부여된 성별과 젠더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을 기술하는 용어이다
- ‘젠더정체성’이란 사람의 내면 깊이 가지고 있는 젠더(gender)에 대한 감각을 말하는데, 출생 시에 부여된 성별(sex)과 같거나 다를 수 있다. 사람의 젠더정체성은 남성, 여성, 남성도 여성도 아님, 또는 남성인 동시에 여성, 즉 넌바이너리나 젠더퀴어일 수 있다. 젠더정체성은 성적 지향이나 젠더표현과 같지 않다. 젠더정체성과 관련 있는 용어들은 에이젠더, 바이젠더, 버치, 여성, FTM, 펨, 젠더 다이버스, 젠더 플루이드, 젠더 퀴어, 남성, MTF, 트랜스 경험 남성, 팬젠더 또는 트랜스 경험 여성을 포함하지만, 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2. 기존 팩트체크
1) 뉴스앤조이 <트랜스젠더가 화장실 가는 게 차별금지법 폐해?/진평연 팩트체크③>
진평연이 써 놓은 내용만 보면 뉴욕시에서 31개 젠더 중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과 다르다. 뉴욕시인권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성별 정체성·표현에 대한 시행 가이드'를 찾아봐도 31개 중 하나를 고르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가이드 2조 '정의'에는 이와 관련한 예시가 다양하게 나오는데, 꼭 31개를 명시한 것도 아니다. 뉴욕시는 시스 젠더, 젠더, 젠더 표현, 젠더 정체성, 논 바이너리,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카테고리를 설명하며 예시로 MTF(male to female), 안드로진(남성과 여성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 사람) 같은 사례들을 나열했을 뿐, 1번부터 31번까지 번호를 붙이고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하지는 않았다.
뉴욕시인권위원회는 전통적인 호칭인 He/She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은 'Ze'로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안내했다. 이는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별도 호칭으로 불러 주기를 원하는데도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거부하면 인권법에 따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뉴욕시는 '고의적이거나 반복적으로 거절하는 경우'라고 명시하고, 단순 실수는 벌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뉴욕시인권법(NYCHRL)이라 불리는 이 법 취지는 고용과 서비스 이용 등의 영역에서 인종, 장애,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등 개인의 사정과 환경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 취지는 비슷하지만, 한국 차별금지법안에는 트랜스젠더를 별도 호칭
2) 코람데오닷컴 <차금법 옹호하는 ‘뉴조’기사에 대한 팩트체크⑦>(2020.7.31.)
뉴스앤조이는 “진평연이 써 놓은 내용만 보면 뉴욕시에서 31개 젠더 중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 같지만, 사실과 다르다...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과 취지는 비슷하지만, 한국 차별금지법안에는 트랜스젠더를 별도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든지 하는 조항 자체가 없다.”고 보도하였다.
▪코람데오닷컴이 게재한 ‘뉴욕시 인권위원회가 발표한 31개의 젠더’
그런데, 장혜영 의원 차별금지법안은 성별 용어를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제2조 제1호). 뉴욕시의 31개 젠더와 같은 ‘제3의 성’을 차별금지법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는 남녀성별2분법 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현행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 트랜스젠더리즘 차별금지를 포함하고 있는 뉴욕시인권조례가 제정된 이후에, 뉴욕시는 관련 법을 개정하여 뉴욕시에서 발급하는 신분증의 성별을 여성(F), 남성(M), 기타 젠더(X) 중 하나로 표기하도록 하였다. 차별금지법이 제정이 되면, 차별금지법의 취지를 반영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남녀 이외의 제3의 성을 도입하는 법령 제, 개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또한, 장혜영 의원안은 성별등을 이유로 적대적·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차별에 포함시켰다(제3조 제4호). 여기에는 언어적인 차별 즉, 소위 혐오표현도 포함된다. 따라서, 직장 등에서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할 경우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도 금지하기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에서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심리적인 성별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거나 트랜스젠더리즘에 반대한다는 표현을 하면,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박탈, 제한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 제9조와 제4조에 따라 순차적으로 뉴욕시 사례와 같이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승인하는 관련 법령, 조례, 규칙의 제, 개정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3. 다시 쓰는 팩트체크
1) 팩트체크
- 성별정체성은 ‘성별정체성 또는 성별표현을 이유로 한 차별에 관한 뉴욕시 인권위원회 법집행 안내서’에서 설명하듯이, ‘사람의 내면 깊이 가지고 있는 성별(gender)에 대한 감각’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보다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정체성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개인의 깊은 내면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한 용어이므로, 국가나 지자체는 이를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을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이러한 표현을 이유로 차별을 하지 않아야할 책무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 이러한 맥락에서 뉴욕시 인권위원회는 어떤 젠더를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한 일이 없다. ‘2016년에 미국 뉴욕시 인권위원회는 31개의 젠더를 승인하였다’는 진평연의 주장은 뉴욕시 인권위원회에 발간한 다양한 자료 중 2015년에 만든 성별정체성‧표현에 관한 카드형 설명자료를 오해하거나 오독한 것으로 보인다. 앞뒤 1장으로 만들어진 이 자료의 앞면에는 뉴욕의 직장, 공공장소, 주거임대와 관련하여 성별정체성과 성별표현을 이유로 차별하는 일이 불법임을 설명하고,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를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적혀있다. 자료 뒷면에는 전세계적으로 성별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다양한 표현들(총 31개)가 예시로 적혀있다. 이는 뉴욕 시민들이 이렇게 다양한 용어로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음을 알고 그를 존중하라는 의미이지, 뉴욕시 인권위원회가 이 31개 표현만을 인정한다거나 31개에 한해 어떤 특별한 효력을 부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 한편 코람데오닷컴은 차별금지법안 중 성별을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고 정의한 조항을 두고 뉴욕시의 31개 젠더와 같은 ‘제3의 성’을 차별금지법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 역시 ‘차별금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차별금지법안, 평등법시안은 모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성별’과 별도의 차별금지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법체계에 비추어보면 ‘성별’의 정의 규정 중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은 간성(間性) 내지 인터섹스(Intersex)[어느 용어를 주되게 쓸 것인지는 문서 전체적으로 통일할 필요. 이하에서는 ‘간성’을 사용하였음]을 의미한다. 위 조항은 법을 통해 ‘분류할 수 없는 성’을 이유로 한 차별 즉, 간성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의미이다. ‘성별을 분류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은 문언상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에 포함되므로, 간성을 이유로 한 차별은 헌법 및 법률에 의해 금지되는 성차별에 해당함이 자명하다.
2) 프레임체크
- 코람데오닷컴은 ‘분류할 수 없는 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반대하면서, 이는 ‘제3의 성’을 도입하는 것이고 ‘남녀성별2분법 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현행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간성(Intersex)의 존재와 인권 보장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 유엔은 간성을 ‘성해부학, 생식기, 호르몬이나 염색체 패턴 등의 신체적 또는 생물학적 성징(性徵)이 전형적인 남성 또는 여성의 정의와 들어맞지 않는 사람’으로 설명하면서, 전체 인구의 0.05%~1.7%가 이러한 간성으로 태어난다는 전문가들의 보고를 인용하고 있다. 즉 인구 1000명 중 5명 내지 17명이 전형적인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되지 않는 성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인구학적으로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 그럼에도 성별은 남성과 여성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비과학적인 통념 때문에 간성인 사람들은 그동안 사회에 존재를 드러내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간성 영아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출생 직후 성별이분법적인 기존 등록체계에 맞도록 한쪽 성으로 강제 지정받는 외과수술을 받아왔고, 고문등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2013년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간성에 대한 이러한 비자발적인 외과수술이나 ‘성별을 고치려는 시도’들이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는 고문 및 학대에 해당한다고 기술하고 있다(A/HRC/22/53). 한국에서도 간성은 있을 수 없는 존재,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되거나 비하의 대상이 되어왔다. 2014년에는 자녀의 클라인펠터증후군 판정을 비관해 자녀를 먼저 죽인 후 자살한 사례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간성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로 여러 사회 영역에서의 차별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간성의 존재에 대해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교육과 더불어 평등법 등의 법률을 통해 간성에 대한 차별이 금지됨을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 코람데오닷컴은 뉴욕시에서 발급하는 신분증의 성별을 여성(F), 남성(M), 기타 젠더(X) 중 하나로 표기하도록 한 뉴욕시의 조치를 문제삼고 있다. 그러나 공적 신원문서의 성별표기 문제는 평등법의 제정 여부와 관계없이 각국이 매우 중대하게 다루고 있는 인권 이슈이다. 공적 신원문서의 이분법적인 성별표기는 앞서 본 간성을 비롯하여 트랜스젠더, 기존의 여성성/남성성의 성별표현을 따르지 않는 사람 등 성별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을 신분확인이 필요한 중요 사회영역에서 계속 차별받거나 배제당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성별이 표기된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관공서, 은행, 보험, 부동산 계약, 핸드폰 개설 등 신분증명이 필요한 일상적 용무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 90명 중 66.7%(60명)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해야하는 일상용무를 수행함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변하였고, 부담을 느낀다고 답변한 응답자 중 63.3%(38명)는 그러한 부담 때문에 전화 가입, 보험 가입 및 상담, 선거 투표, 은행 방문 및 상담, 여권 발급, 주택 거래 등의 용무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하였다.
- 공적 신원문서의 이분법적인 성별표기에 대해서는 현재 세계적으로 다양한 방향의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많은 국가에서 이분법적인 성별표기로 인한 시급한 인권침해를 해소하기 위해 여권, 운전면허, 의료카드, 출생증명서 등의 공적 문서의 성별란에 여성, 남성 외에 제3의 선택지를 두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례로 2019년 독일의 신분관계법은 출생신고 시 아이의 성별로 ‘여성’, ‘남성’ 외에 ‘미기재’나 ‘다양’란을 선택할 수 있도록 개정되었다. 이는 2017년 연방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른 것이다. 독일 신분관계법은 2013년부터 출생한 아이가 여성 또는 남성으로 분류될 수 없는 경우 출생증명서의 성별란을 빈칸으로 남겨둘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여” 또는 “남” 외에 제3의 성을 적극적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한, 일반적 인격권 침해와 성별에 따른 차별금지 원칙 위반으로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위 결정은 “독일기본법은 성에 관한 신분관계를 이원적으로만 결정하도록 명하지 않으며, 여성과 남성 외의 또 다른 성적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독일 외에도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의 여러 주, 인도, 파키스탄, 몰타, 네팔 등 다양한 국가와 지방정부들이 신분증명서와 여권 등에 여성, 남성 외에 제3의 선택지를 두고 있다. 성별란에 제3의 선택지를 두는 방식의 한계점도 지적된다. 위의 방식은 기존의 성별이분법적 표기를 그대로 둔 채 이에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만을 분리하여 낙인찍는 방식이 될 수 있으므로 공적 문서에서 불필요한 성별 표기 자체를 없애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개선 방향이라는 것이다. 제3차 세계 인터섹스 포럼(International Intersex Forum)은 2013년 발표한 성명서에서 ‘미래에는 인종이나 종교와 마찬가지로, 성별(sex or gender) 또한 누구에게든 출생증명서나 신분증에 표시되는 범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분법적인 성별표기로 인한 차별을 줄이고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으로, 공적 문서에서 불필요한 성별표기를 없애는 방향의 제도 개선과 노력 또한 세계적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공적 문서에서의 성별표기의 문제는 한국에서도 시급하게 고민되어야할 주요한 인권 이슈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