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클 '미디어 리포트' #3 '성소수자 부모모임' 기자회견 언론 보도 분석
여러 장로교단의 총회가 진행되던 지난 9월 22일, 성소수자 부모모임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가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교회가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님들의 바람과 달리, 기자회견 다음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회봉사부는 한국교회총연합과 손잡고 “차별금지법 반대 논리를 개발할 것”이라 밝혔는데요. 기독교계 주류는 오래 전부터 성소수자 관련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배격해왔죠.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올해에도 여러 장로 교단 총회에서 ‘반동성애’ 관련 청원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하늘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에서 “어디에나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성소수자는, 교계에서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탄압받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죠. 바로 이럴 때 나타나 ‘인권의 최후 보루’이자 ‘공론장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는 주체는 언론입니다. 언론은 22일 기자회견을 어떻게 전했을까요?
성소수자 부모님들의 기자회견, 사진기사만 주르륵
9월 22일부터 24일까지, 성소수자부모모임의 기자회견을 전한 보도는 29건에 불과합니다.(포털 사이트 네이버 ‘성소수자 부모모임’ 키워드 검색 결과 기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날 기자회견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 기사는 없었다는 점인데요. 사실 그 정도로 보도량이 많지도 않았죠. 29건 기사 중에서 21건이 사진기사였고, 기자회견의 발언이라도 담아준 ‘내용이 있는 기사’는 고작 8건(KBS, 뉴스1, 한국경제, 오마이뉴스, 연합뉴스, 뉴스앤조이, 가톨릭프레스)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이 있는 기사들도 대부분 기자회견 스케치 수준이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님들은 기자회견과 같은 대외적 행위를 통해 현장의 목회자들에게 호소하는 동시에, 언론의 주목을 받아 한 번이라도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 이슈를 알리고 싶었을 겁니다. 아쉽게도 대다수 언론이 그런 당사자의 고민을 외면한 건데요.
반면 9월 24일, ‘우파 시민단체 연합’이 “드라이브 스루로 개천절 집회 강행”을 선언했다는 기사는 24일 하루에만 274건이나 나왔습니다. ‘보수단체의 개천절 집회’ 여부가 코로나19 방역의 측면에서 매우 민감하지만, 하루 274건과 29건의 차이는 너무 큽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교계 차별금지법 제정 지원 촉구 기자회견 보도량
(2020.9.21.~9.24. 포털 네이버 키워드 검색 기준) Ⓒ
언론의 뒤틀린 ‘기계적 중립’ 습관
내친김에 이번에 기자회견을 열었던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다룬 그동안의 언론보도는 어땠는지 살펴봤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2014년 2월,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소모임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며 성소수자 자녀와 부모 간 소통을 돕고 성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대외 활동도 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아직 가부장제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 부모님들이 겪는 고뇌와 어려움도 상당할텐데요. 이러한 노고를 인정하여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올해 1월 10일, 제9회 이돈명 인권상을 성소수자 부모모임에게 수여했습니다. 이런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언론은 어떻게 그렸을까요?
조선일보의 2018년 7월 14일 기사(<"성소수자는 어디에든 있어" vs. "우리 아이들 돌려줘"…주말 서울광장의 진풍경>)는 2018년 19회를 맞은 퀴어문화축제 현장을 스케치한 보도로 보입니다만 실상은 다릅니다. 일단 제목부터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 ‘성소수자들이 우리 아이들을 속여 빼앗아 갔으니 돌려 달라’는 발언을 끼워 넣어 ‘성소수자 인권’을 대립과 ‘찬반’의 문제로 비틀었습니다. 흔히 ‘기계적 중립’이라고 말하는 방식이 잘못 사용된, 또는 일부러 그렇게 잘못 쓴 대표적 사례입니다. 기사 내용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기사를 클릭해서 열자마자 “반라 옷차림·성인용품에 시민들 눈살 찌푸리기도”라는 소제목이 눈에 들어오죠. ‘퀴어문화축제’가 열렸고 바로 근처에 ‘퀴어 반대 집회’도 열렸다는 첫 문장을 지나가면 곧바로 “동성애의 늪에 빠진 우리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반동성애 진영의 “목소리”를 인용해놨습니다.
도대체 뭘 속였다는 걸까요?
‘반동성애’ 하면 빠질 수 없는 국민일보도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이상한 논리에 갖다 붙인 기사를 쓴 바 있습니다. “젠더이데올로기 실체를 말한다”라는 시리즈 중 [‘성평등=양성평등’이라던 경기도의원들 “제3의 성도 포함”]이라는 긴 제목을 단 2019년 11월 12일 기사인데요.
보도는 “일부일처제의 근거 조항인 현행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 ‘양성평등(equality between men and women)’을 삭제해 동성혼을 포함하는 다양한 가족제도를 도입”하자는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2017~2018)의 제안과 “양성평등이 아닌 ‘성평등 조례’라는 명칭을 사용”한 서울특별시·경기도 등 14개 지자체의 조례안이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 남녀 이외의 제3의 성까지 포함”하는 “젠더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했습니다. 한 마디로 ‘양성평등’ 외에는 그 어떤 성정체성도 평등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건데요.
국민일보는 “양성평등과 성평등은 같다”고 한 경기도의원들을 향해 “도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도의회가 도민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도 있는데 바로 정의당 경기도당이 개최한 시민 초청 간담회에 성소수자 부모모임, 트랜스해방전선 등이 참여했으니 “성평등이 동성애, 양성애, 트랜스젠더리즘, 제3의 성을 포함한다는 것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는 겁니다.
언론의 창의적인 ‘이데올로기’
‘성평등은 양성평등과 같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입니다. 다양한 성정체성에는 당연히 남녀라는 전통적, 생물학적 ‘양성’도 포함되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굳이 ‘성평등 조례안’을 ‘양성평등 조례’로 바꿔야 한다며 ‘도민 우롱’,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을 쓴 국민일보야말로 이분법적, 교조주의적 시각에 매몰된 것 아닐까요?
또한 ‘젠더’에 ‘이데올로기’를 붙여 만든 신조어를 보면 그 엇나간 창의성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이데올로기의 사전적 의미는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사상, 행동 따위를 이끄는 관념이나 신념의 체계”인데요. 현실적으로 보면 권력이 사회를 지배하기 위해 동원하는 사상 체계, 지배의 편의를 위해 만든 옳고 그름의 사상적 기준선 정도가 되겠죠. ‘젠더’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자 자기 형성, 즉 그 사람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성이자 이성애자이자 경기도 출신이자 3대 독자이자 한 쪽 눈 실명’이라는 한 사람의 정체성은 애초에 누구를 지배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죠. 누군가와 소통할 때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당연한 상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지도 않은 갈등과 불통을 만들어 소수자들을 부당하게 ‘지배’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방금 본 국민일보 기사 같은 것이죠. 별로 복잡하지도 않은 궤변을 거창하게 포장하면서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사람들을 속인 증거’에서 거론한 그 의도가 안타깝네요.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신조어를 쓴 국민일보 기사 캡쳐
가뭄에도 꽃은 피고 평등법은 제정되리라
척박한 토양에 그래도 좋은 기사들도 많습니다. KBS는 9월 22일 기자회견 현장 영상을 뉴스 콘텐츠로 만든 유일한 방송사입니다. ‘불신 지옥’ 선생님의 기자회견 방해도 생생하게 볼 수 있죠. KBS는 2019년 5월 10일,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거리의 만찬’에서 성소수자 부모모임 편을 제작해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일보는 9월 20일에 성소수자 부모모임 장선영 운영위원을 인터뷰한 기사("퀴어축제엔 부모들도 있답니다"…토크쇼 연 성소수자 엄마아빠들)를 냈고 그 성소수자 부모모임 토크쇼는 한겨레 등 다른 매체도 소수지만 기사를 냈습니다. 한국일보의 [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라는 기획 시리즈도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 인권이 우리 모두를 위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 쉽게 알려줍니다. 주간지 시사인은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의 차별금지법 해설 칼럼을 오랜 기간 연재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기도 합니다. 기독교계 개혁을 슬로건으로 삼는 교계 매체 뉴스앤조이의 경우 ‘반동성애 진영’으로부터 소송 폭탄 등 탄압까지 받아가며 인권과 평등이라는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갈 길은 멉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은 여전히 ‘발의’ 문턱을 넘기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학문적, 사회적으로 ‘팩트체크’가 끝난 성소수자 관련 허위 정보들은 여전히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죠. 저들이 평등법을 ‘동성애 독재법’으로 명명하는 사이, 평등법이 인권을 보장하고자 했던 수많은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 지금도 누군가를 울게 할 몰상식한 숨은 차별은 은폐됐습니다.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현장이지만, 우리 언론이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기자회견과 같은 사안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시민들과 소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2020년 9월 25일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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