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안 개요
2022년 5월, 정치권에서 성 비위 사건이 불거졌다. 내용과 양상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 기에 발생한 성 비위 이슈를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윤재순 비서관의 전력과 시구절에 대한 보도는 우리 언론이 생활 속 성희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이슈였다. 이런 배경으로 2022년 5월 언론은 이 두가지 성비위 사안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보았다.
1) 박완주 의원 성 비위 의혹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의 성 비위 및 갑질 의혹은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의혹과 비슷한 시기인 5월 12일 더불어민주당 박지현·윤호중 당시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및 제명 결정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정부·여당 측 성 비위 이슈인 윤재순 비서관 논란과 같은 시기에 야당에서도 성 비위 논란이 벌어져 언론 보도는 같은 시기인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집중되었다.
이 사건은 피해자 측과 민주당 모두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성추행, 성희롱 의혹의 구체적인 피해 양상을 공개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발표와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의혹의 핵심 내용은 2021년 12월 박 의원이 보좌진에게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 민망한 성희롱성 발언 등”을 가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피해자 서명을 위조한 사직서로 의원면직(강제 해고)을 시도했고 금전으로 사건 무마를 시도했다는 문제도 불거졌다.
사건이 알려진 후 3일이 지난 5월 15일 박완주 의원은 “아닌 건 아니다”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으며 6월 6일에도 “사실조사도 명확히 이루어지지 않고 이미 피해 주장이 기정사실화된 현실 상황에서 부정이나 그 어떤 최소한의 반박도 2차 가해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진실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곳에서 밝혀 나가겠다”며 재차 의혹을 부인,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 피해자의 경우 결국 박 의원이 4월 29일 재차 직권면직을 신청하여 5월 29일 면직 예정이었으나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국회 사무처가 면직 절차를 보류했다.
과거 당사자의 글과 징계 기록, 제 3자의 증언 등 객관적 근거가 존재하여 의혹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뚜렷한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논란과 달리 박완주 의원 사건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 사실관계를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피해자 측과 박 의원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언론 보도에 드러나는 사실관계 자체가 모호했다.
2) 윤재순 총무비서관 논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첫 총무비서관으로 임명된 윤재순 비서관의 성 비위 및 성 인식 논란은 5월 13일에 게재된 한국일보 < '尹 집사' 윤재순, 검찰서 2차례 성비위…알고도 임명한 듯>(5/13)과 경향신문 <‘시인’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왜곡된 성인식…성추행을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5/13)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6월 2일에도 추가적으로 발견된 시집 속 문제적 표현을 지적한 한국일보 보도가 이어지긴 했지만, 윤재순 비서관의 젠더 감수성 관련 논란 언급 보도는 5월 13일부터 5월 20일까지의 기간에 집중되었다.
윤재순 비서관의 젠더 감수성 논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과거 검찰에서 징계를 받기도 했던 성추행 논란이다. 1996년 10월 서울남부지청에서 검찰 주사보로 근무 당시 여성 직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하여 인사 조치되고, 2012년 7월 대검 정책기획과 사무관 근무 당시 회식 도중 여성 직원의 외모를 품평하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부적절한 행위로 대검 감찰본부장 경고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5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 대통령실과 윤 비서관 본인의 해명에 따르면 “정식 징계 절차가 아니다”라면서도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시인하였다.
또 한 가지는 검찰 재직 시절 윤 비서관이 출간한(비매품 포함) 시집에서 노출된 여러 문구들이 문학적 허용 수준을 넘어 왜곡된 성 인식이 아니냐는 논란이다. 대표적 사례로 2002년 11월 출간한 첫 시집 <가야 할 길이라면>에 실린 시 ‘전동차에서’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전동차에서만은
짓궂은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그래도 보장된 곳이기도 하지요.
풍만한 계집아이의 젖가슴을 밀쳐 보고
엉덩이를 살짝 만져 보기도 하고
그래도 말을 하지 못하는 계집아이는
슬며시 몸을 비틀고 얼굴을 붉히고만 있어요.
다음 정거장을 기다릴 뿐
아무런 말이 없어요
이후 YTN <여성전용칸 때문에 ‘성추행 자유’ 박탈?...윤재순 시, 한줄 더 있었다>(5/17)에서는 2001년 발간된 <석양의 찻잔>이라는 시집에도 ‘전동차에서’가 실려있는데 여기서는 <전철칸의 묘미>라는 황당한 부제까지 달려있을 뿐 아니라, “요즘은 여성전용칸이라는 법 만들어 그런 남자아이의 자유도 박탈하여 버렸다나”라는 표현까지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림> 윤재순 비서관의 시 일부 / YTN 보도 화면 갈무리
게다가 <석양의 찻잔> 시집에서는 “목길에 늘어선 몸을 파는 창녀들한테 몸을 맞기어 보다가”(‘26년 간의 토막 살인’), “흥청대는 무리들 속에서 얄팍한 웃음을 덤핑하는 미인들은 누구인가/누가 말하리/누가 그이들에게 비웃음을 조각하리/오직 한가닥 싸디싼 웃음을 사기 위하여/돈을 뿌려대는 무리들에게/그 누가/무의미한 웃음을 조각하리”(‘스탠드바에서’) 등과 같이 성매매나 성 상품화를 암시한 내용도 있다.
이 밖에도 “아카시아의 향기는 아낙네의 하이얀 속치마와 같고/소나무는 검은 자켓과 같음이요/아카시안 허벅지와 같이 넓고 펑퍼짐하고/소나무는 옹달샘의 샘물과 같습니다”(‘아카시아와 소나무’), “임산부의 유방처럼 부풀어오르는 가슴앓이”(‘석양의 찻잔’), “미친이의 살결에 울먹이는 순결처럼 흐트러지는 가슴입니다”(‘상흔’) 등 여성의 신체나 옷차림을 묘사한 문구 다수 발견됐다.
문학은 자유롭게 작가의 내면과 상상을 펼칠 수 있는 분야임은 분명하지만, 윤 비서관이 권력기관인 검찰 근무 당시 작성한 문구들이란 점에서 논란 대통령실 내 성폭력 예방교육 담당자이자 고위직인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라는 점에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 양적 분석
1) 보도 기간 분석
윤재순 비서관과 박완주 의원의 성 비위 의혹 관련 보도를 분석하기 위한 데이터는 모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 보도 빅데이터 서비스인 빅카인즈에서 추출했다. 분석 기간은 5월 13일부터 5월 20일까지로 한정하였다. 두 사건 관련 보도가 모두 이 기간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박완주’ 언급 보도는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726건에 달했는데 이후 보도량이 감소하여 역시 6월 10일에는 보도가 없는 수준이다.(<그림3> 참조) ‘박완주’ 언급 보도의 경우 5월 20일 이후 보도량 감소 추이가 ‘윤재순’ 언급 보도에 비해 완만한 편이다. 이는 해당 사안이 은 6월 1일 있었던 지방선거와 맞물려 ‘충청 지방선거 판세’와 함께 언급되는 사례가 꾸준히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림2> 5.13~6.13 ‘박완주’ 언급 보도량 추이
‘윤재순’ 언급 보도는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533건에 이르렀으나 이후 50건 이하로 떨어져 6월 10일에 이르면 사실상 보도가 없었다. (<그림3> 참조)
▲ <그림3> 5.13~6.13. ‘윤재순’ 언급 보도량 추이
두 이슈가 양상이 다소 다름에도 불구하고 5월 13일부터 20일까지 보도가 집중된 기간이 겹친 배경으로는 ▲비슷한 시기에 첫 보도가 나온 정치권, 그것도 여야 각각의 성 비위 사건이라는 점 ▲5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여야 공방이 벌어져 두 사건이 모두 거론되는 등 정치권 언급이 이 한 주간 집중됐다는 점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과 정치권에서 정략적, 선거 공학적 접근으로도 언급이 많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배경은 권력층의 성 비위 의혹이라는 사안의 본질보다는 지방선거 판세 분석, 여야 정치권 공방전 등에 초점을 맞춰 사안을 ‘정치화’한 언론 보도의 특징으로도 연결된다.
2) 분석 대상 보도
분석 대상 보도의 키워드를 분석해보았다.
▲ <표1> ‘박완주’,‘윤재순’ 언급 보도 중 ‘성 비위’ 관련 키워드
동시 언급 보도량(5.13~5.20, 중복 포함, 추출 빅카인즈)
분석 기간 중 ‘윤재순’ 언급 보도와 ‘박완주’ 언급 보도는 자연스럽게 대부분 성 비위 의혹 관련 키워드를 다뤘다. 특히 ‘박완주’ 언급 보도의 경우 총 726건 중 ‘제명’ 519건, ‘성추행’ 151건, ‘성 비위’ 373건(중복 포함)으로 대부분의 보도가 ‘성 비위’ 관련 키워드를 동시 언급했다.
‘윤재순’ 언급 보도 역시 533건 중 ‘성 비위’ 언급 보도가 240건, 젠더 감수성 및 성 인식 논란을 촉발한 ‘시집’ 언급이 171건(중복 포함)으로 상당수가 ‘성 비위’ 관련 키워드를 동시 언급했다. ‘박완주’ 언급 보도와의 차이점은 ‘검찰 중심 인사’라는 전혀 다른 키워드가 269건 언급되었다는 정도이다. 이는 윤재순 비서관이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등 대통령실 다른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검찰 출신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비판이 함께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성 비위 의혹 관련 키워드 중 가장 중심적이고 보도량도 많은 ‘성 비위’ 동시 언급 보도들로 범위를 한정하여 분석했다. 따라서 정확한 보도 분석 대상은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240건과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 373건이다.
3) 정치권 성 비위·성 인식 논란의 정치화 양상
▲ <표2> ‘박완주·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중 두 사안 동시언급 및 ‘지방선거’ 동시언급 보도량(5.13~5.20, 중복 포함, 추출 빅카인즈)
두 사안 보도에서 가장 큰 특징은 ‘성 비위 사건의 정치화’라 할 수 있다. 과거 검찰에서의 성희롱에 따른 징계, 직접 쓴 시에서 나타난 성 인식의 왜곡 논란, 보좌진을 향한 성추행 및 은폐 시도 의혹 등 사안 자체는 ‘권력형 성범죄’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지만 언론 보도 대부분은 정치권 공방 중계, 정략적·정치공학적 비평, 지방선거 판세에의 영향 등에 초점을 맞췄다.
일단 성격과 내용이 다른 두 사안을 ‘성 비위’라는 이름 아래 단순히 동시 언급한 사례들이 눈에 띈다. ‘박완주 성 비위’와 ‘윤재순 성 비위’를 동시에 모두 언급한 보도가 73건으로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중에서는 30%,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 중에서는 20% 비중을 차지했다. 언론이 ‘정치권 성 비위’라는 이유로 한 개의 보도 안에서 이 두 사안을 단순 나열하거나 정치권에서 각자 상대방 진영의 성 비위 사건을 비판한 공방전을 중계한 사례가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국제신문 <민주 “성상납은 범죄행위” 국힘 “더불어 M번방” 난타전>(5/16), KBS <‘성 비위 의혹’ 박완주 제명 의결…이준석 “윤재순 사과하고 업무해야”>(5.16)가 대표적인 사례다.
주요 키워드 언급 보도량에서도 ‘정치화’ 양상이 쉽게 포착된다. 특히 박완주 의원 의혹의 경우 구체적 피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 윤재순 비서관보다 133건이나 더 많이 보도되었다. 박완주 의원의 경우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지 않아서 보도할 내용이 딱히 없지만 ‘박완주 성 비위’를 많이 언급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주로 해당 사안을 정치적, 정략적 차원에서 많이 다룬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두 사안을 ‘지방선거’와 함께 언급한 보도가 상당히 많았다. 그나마‘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중에서는 77건으로 그 비중이 32%이다. 국회의원이 사건 당사자인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 중에서는 ‘지방선거’ 동시 언급이 54%인 200건에 달한다. 매일경제 <지방선거 공약은 어디가고…여야, 성 비위 '난타전'>(5/16)이 대표적 사례인데, 절반 이상의 보도에서 국회의원 성 비위 의혹을 ‘지방선거’와 함께 다룬 것이다.
구체적 피해 사실을 통해 ‘권력형 성범죄’등 본질적 부분을 고발 또는 지적할 내용이 없음에도 굳이 일주일 만에 ‘지방선거’ 차원에서 다룬 보도를 200건이나 낸 것은 과도한 보도량이라고 판단된다. 보도 내용 역시 대동소이하여 각 정당의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따지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4) 권력형 성범죄 본질 외면
▲ <표3> ‘박완주·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중 주요 키워드 언급 보도량
(5.13~5.20, 중복 포함)
앞서 살펴본대로 보도량의 상당수가 정치적 해석과 공방에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성 비위’ 자체의 문제점은 언급이 적었다.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의 경우 윤재순 비서관이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으로서 ‘성폭력 예방교육’ 담당자라는 사실이 적절성 여부가 사안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총 240건의 보도 중 ‘성폭력 예방교육’을 언급한 사례는 12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YTN <김현숙 "윤재순, 성폭력 예방 교육 담당은 맞지 않아">(5/19) 보도와 같이 김현숙 여성부장관의 ‘부적절하다고 본다’는 취지의 발언을 받아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윤재순 비서관 사안과 관련해서는 특히 사설에서 ‘성 비위’에 대한 외면이 두드러지는데 ‘윤재순’을 언급한 사설은 16건에 이르렀으나 대부분은 ‘인사 검증’이나 ‘검찰 출신 인사’ ‘지방선거 네거티브’의 문제점을 다뤘고 ‘성 비위’는 3건에서만 언급될 정도로 적었다.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도 비슷한 양상이다. 박완주 의원 사건의 경우 대리 서명 면직시도 의혹, 금전 제공을 통한 무마 시도 의혹 등 ‘2차 가해’ 의혹까지 겹쳐 ‘권력형 성범죄’ 차원에서 다룰 여지가 충분했으나 ‘권력형 성범죄’는 24건 언급에 그쳤고 ‘대리서명 면직 시도’ 언급은 12건에 불과했다. ‘2차 가해’ 언급은 102건으로 총 373건의 보도 중 27% 비중을 보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세계일보 <“처벌해달라”… 박완주 ‘성 비위 의혹’ 피해자, 고소장 제출>(5/16)와 같이 피해자가 5월 16일 고소장을 제출하자 이를 받아쓰기하며 단순 언급한 수준이었다. 박완주 의원 사안은 국회의원의 성 비위 의혹이라는 특성에 따라 ‘국회페미’, ‘국회 보좌진협의회’ 등 피해자 측에 선 단위의 의견 표명이 있었으나 ‘국회페미’는 아예 언급한 보도가 없었다. ‘보좌진협의회’ 역시 23건뿐이었다. 피해자가 보좌진임에도 불구하고 ‘보좌진’ 언급도 50건에 그쳤다. 반면 조선일보 <박완주 “아닌 것은 아니다”… 성폭력 의혹 사과 대신 부인>(5/16)과 같이 박완주 의원이 5월 15일 “아닌 건 아니다”며 발표한 입장은 28건에서 인용 보도되었다.
이런 보도량을 통해 언론이 사태의 본질인 성 비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정치적 쟁점화만 시도했다는 점 이외에, 피해자 측의 목소리마저 외면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엿볼 수 있다.
5) 보도 논조 분석
▲ <표4> ‘박완주·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논조별 분석(5.13~5.20)
‘윤재순 성 비위’,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를 비판적 논조, 옹호 논조, 중립적 논조로 분류해보았다. 논조 분류는 제목과 내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였으며 받아쓰기, 중계 보도가 지배적인 점을 감안하여 누군가의 발언을 받아쓴 보도라도 그 비판적 발언 중심의 인용인 경우 ‘비판’으로 분류했으며 적극적으로 의혹이나 문제점을 제기하는 보도는‘비판’으로 산정했다. 박완주 의원 사건의 경우 구체적 피해 사실이 함구되었기 때문에 의혹 제기 보도는 없었으나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할 당시 피해자의 비판적 입장을 받아쓴 보도, 사건에 대한 처리에 있어 민주당을 비판하거나 그 비판을 인용한 경우, 박완주 의원 입장을 비판하며 인용한 경우를 ‘비판적 논조’로 분류했다. 이외 지방선거 등 다른 현안에서 ‘성 비위’를 단순 언급한 경우, 양측 입장을 병기한 경우, ‘박완주 제명 의결’ 등 경위를 단순 전달한 경우는 ‘중립적 논조’로 분류했으며 윤재순 비서관과 박완주 의원 본인의 입장이나 옹호하는 발언을 담은 경우 당연히 ‘옹호 논조’로 산정했다.
분석 결과 기계적 중립 양상이 두드러졌다.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240건 중 ‘비판’은 61건, ‘중립’은 117건, ‘옹호’는 62건으로 나타났다. 앞서 확인했듯 정치권 공방 중계 보도, 발언 받아쓰기 보도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인데 언론이 윤재순 비서관을 비판하는 발언과 옹호하는 발언을 정확히 같은 양으로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옹호’ 보도의 대표적 사례로는 성 비위 논란과 과거 징계 사실에 대한 윤 비서관 본인의 해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쓴 아시아경제 <'직원 입맞춤' 해명하려던 윤재순 "'생일빵'에 화가 나 '뽀뽀해주라' 했다">(5/17), YTN <김대기 비서실장 "일부 인사 국민 눈높이 어긋나"...윤재순 "국민께 상처 사과">(5/17)를 언급할 수 있다. …
다만 권력 최상부인 대통령실의 비서관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비판’ 보도 중에는 인용 보도가 아닌 사례도 있다. 특히 첫 보도가 나온 5월 13일에는 적극적인 문제제기 보도가 많았다. 첫 보도를 이끈 한국일보 <단독/'尹 집사' 윤재순, 검찰서 2차례 성비위… 알고도 임명한 듯>(5/13), 경향신문 <‘시인’ 윤재순 총무비서관의 왜곡된 성인식…성추행을 '사내아이들의 자유'로 묘사>(5/13) 등이 대표적이다. 그
한편 ‘성 인식 논란’을 다룬 것처럼 보이는 제목을 쓰고도 정작 보도 내용에서는 대통령실의 반박, 해명에 초점을 맞춘 사례들도 있다. 중앙일보 <"엉덩이 살짝, 사내아이 자유" 윤재순, 지하철 성추행 옹호詩?>(5/15)의 경우 제목에서 “성추행 옹호시?”라고 의문을 던졌으나 보도 본문에서는 “‘시적 허용’을 감안하더라도 성추행 범죄를 ‘자유’로 묘사한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어“20년 전에 쓴 시로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 성추행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통령실 해명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해당 논란을 다뤘다. 이런 보도는 ‘비판적 논조’가 아니라 ‘옹호’하는 입장 중심의 보도라 볼 수 있다.
‘비판’ 보도 중에는 성범죄가 아닌 ‘검찰 출신 인사’에 초점을 맞춘 세계일보 <尹 정부, 성비위 간첩조작 논란에도 검찰 출신 인사 ‘직진’>(5/18)과 인사 검증 부실’을 지적한 MBC <대통령 측근 윤재순 총무비서관 성비위 전력? 검증 제대로 했나>(5/13)와 같은 사례가 대부분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성 인지 감수성이나 성평등, 권력형 성범죄 차원에서 서술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권력형 성범죄’ 자체의 문제점을 조명한 소수의 사례로는 한국일보 <왕을 죽인 형제들은 여자들이 없는 곳에서 국가를 만들었다>(5/19)를 들 수 있다. 허윤 부경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이 칼럼은“윤재순 총무비서관은 2002년 발표한 시에서 지하철을 ‘사내아이들의 자유가 보장된 곳’으로 명명하며 성추행을 낭만화했다는 비판”과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과 더불어 '방석집'에서 박사논문 심사를 진행했던 것”을 묶어 “지하철에서, 방석집에서 그들은 형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운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이 형제들의 정치는 자유, 평등, 박애가 남성 형제들에게만 허락된 프랑스 혁명의 배면과 똑 닮았다. ”라며 비유적으로 비판도 곁들여졌다.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에서는 기계적 중립 양상이 똑같이 확인되었으나, 차이점도 있었다. 총 373건의 보도 중 ‘비판’은 62건, ‘중립’은 297건, ‘옹호’는 14건인데 ‘중립’ 보도가 많아 역시 기계적 중립의 중계 보도 경향이 두드러졌다. 차이는 그 비중이다.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 중 ‘중립’ 보도의 비중은 80%로 49%인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보다 월등히 높다. 이는 피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사안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언론이 과도하게 정치권 공방을 반복 중계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옹호’ 보도가 14건으로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건에 비해 훨씬 적은 것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이 역시 사건 자체의 특성에 기인한다. 윤 비서관 논란은 언론이 발굴하여 문제 제기한 것으로 윤 비서관 본인은 물론,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힘까지 옹호 발언을 할 주체가 다양했으나, 박완주 의원 논란의 경우 민주당 스스로 성 비위 발생 사실을 밝히며 대국민 사과를 했으므로 옹호 발언의 주체가 박 의원 본인 한 명에 국한됐다. 실제로 ‘박완주 성 비위’ 보도 중 ‘옹호’ 보도 14건 중 13건은 서울신문 <민주, ‘성 비위’ 박완주 윤리특위 제소 朴 “아닌 것은 아니다”>(5/15)와 같이 5월 15일 나온 박 의원 본인의 입장을 받아쓴 것이다. 예외인 보도는 제3자(황교익 칼럼니스트)의 옹호 입장 인용 보도한 매일신문 <황교익 "민주당, 자학 멈추고 '개딸'에게 배워라 성추문 대가 이미 치러">(5/14) 정도였다.
이렇게 의혹과 사태 자체의 양상이 달랐기에, 보도 경향의 차이가 있었으나, 똑같은 문제점도 있었다. 바로 권력형 성범죄라는 문제의식이나 성평등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본 보도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비판’ 보도의 비중 자체가 373건 중 62건, 17%로 25%인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관련 보도보다 떨어졌다. 비판 보도의 상당수가 정치공학적 접근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동아일보 <민주 “유권자 볼 면목 없어” 성비위 곤혹 시선 돌리려 與에 화살>(5/14), 조선일보 <민주 ‘성폭행 사죄’ 하루뿐… 바로 역공>(5/14) 의 경우, 인용이 아닌 직접 민주당을 비판한 사례지만 ‘권력형 성범죄’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자당의 박완주 의원 사건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해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등 여당의 문제점을 지목하니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기사들로서 ‘태도 문제’를 지적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사태가 처음 본격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한 5월 13에는 조선일보 <사설/오거돈 사건 판박이 민주당 박완주 성범죄, 보좌진들 “더 있다”>(5/13) 등 ‘국회의원의 반복되는 성 비위’에 초점을 맞춘 사설만 7건이 나왔다. 한겨레 <‘성폭력 제명’ 박완주, 피해자 해고까지 시도했다>(5/13)처럼 2차 가해 의혹을 적극적으로 파헤친 보도도 있었으나 지배적인 사례들은 아니다.
‘비판’ 보도의 대부분은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와 마찬가지로 중계 양상으로 흘렀고 국민일보 <송영길, ‘성비위’ 박완주에 “책임지고 의원직 사퇴해야”>(5/16) 세계일보 <시민단체들, '성 비위 의혹' 박완주 잇따라 검 경에 고발>(5/13) 등 비판적 입장 인용 사례가 두드러졌다.
3. 주요 보도 사례 분석
1)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언급 보도 주요 사례
‘젠더 이슈의 정치화’ 성격이 두드러진 사례
정치권 성 비위 관련 보도의 대부분이 인용 보도, 공방 중계 보도에 집중되면서 벌어지는 ‘젠더 이슈와 정치화’는 결과적으로 ‘권력형 성범죄’ 또는 성 인식의 왜곡 문제를 은폐, 축소할 우려가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윤재순 성 비위’를 여야 공방으로 처리한 보도 중에서도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을 언급한 경우다.
총 240건의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 중 ‘탁현민’을 함께 언급한 사례만 50건인데, 세계일보 <野, '윤재순 성 비위' 맹공 與, '탁현민 논란' 맞불>(5/17)이 대표적이다. 뉴시스 보도를 전제한 이 보도에는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화면에 윤 비서관이 지난 2012년 발언했다는 '러브샷을 하려면 옷을 벗고 오라', '속옷은 입고 다니나' 글귀를 띄운 뒤 "2021년에 신입 여경 한 명에게 '음란하게 생겼다'고 발언한 남성 경찰관들의 무더기 징계가 있었다"고 비교했다”고 기술했다. 이밖에도 천준호, 양경숙 의원 등의 비판을 나열한 뒤 기자는 “야당 의원들의 낯 뜨거운 비판이 이어지자 여당에서는 이전에 비슷한 사례로 비판받았던 탁현민 전 행정비서관을 거론하며 윤 비서관에게 해명을 요구했다.”고 썼다. 한마디로 이 보도에서는 윤재순 비서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야당 의원들의 낯 뜨거운 비판’으로 규정한 뒤, 여당의 해명을 요구하면서도 굳이 탁현민 전 행정비서관 문제를 섞어서 물타기를 했다. ‘권력형 성범죄’ 비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낯 뜨거운 비판’으로 규정지은 것도 어처구니없을 뿐 아니라, 탁현민 전 비서관 과거 저서 논란을 억지로 이 사안에 끼워넣는 기술행태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이다.
또한,“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시민사회계, 여성계, 민주당 의원들도 경질을 요구할 만큼 심각한 여성비하 논란이 됐던 탁 비서관의 사례가 있었다”, “탁 전 비서관은 콘돔을 싫어하는 여자, 몸을 기억하게 만드는 여자 등등을 언급했다”,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 등등 여자를 이상하게 유형별로 나눴다. 또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무엇인가 받쳐입지 말라는 언급도 했다” 등 국민의힘 의원들의 발언을 길게 인용했다.
전형적인 공방 중계, 기계적 중립 보도로서 보도의 구성 자체로도 ‘권력형 성범죄’의 문제를 희석하는 가운데, 교묘한 문장들로 윤재순 비서관 성 비위 논란을 축소했다고 볼 수 있다. 탁현민 전 비서관의 과거 논란은 여성을 성적대상화하며 모욕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서 윤 비서관 논란의 경우 정확하게 피해자가 존재하는 검찰에서의 직장 내 성희롱 징계, 직접 출간한 시집에서 드러난 왜곡된 성 인식으로 탁 전 비서관 논란과는 결이 다르다. 이처럼 단순하게 동일시 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서 정치권에서 정치적 공방 차원에서 두 사안을 동일시하는 발언이 쏟아질 때, 언론은 그런 프레임이 적절한가 지적해야 마땅하다. 두 사안을 모두 보도에서 언급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정확히 어떤 점에서 성평등과 성인지 감수성 차원에서 부적절한지 각각 짚어줘야 했다. 그러나 이런 측면에서 매우 부족한 보도였다.
이러한 젠더 이슈의 정치화는 사설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분석 기간 중 ‘윤재순’ 언급 사설은 16건이나 나왔으나 이중 ‘성 비위’ 언급은 3건에 불과했으며 나머지는 정치적 해석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문화일보 <사설/尹대통령은 협치 손 더 내밀고 巨野는 발목 잡기 끝내야>(5/16)는“윤 대통령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문제에서 더불어민주당 요구에 부응하고, 민주당은 한덕수 총리 임명동의안을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의 사설이다. 이 사설에서는 정부와 야당 모두에게 충고하는 듯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민주당 비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윤 대통령은 “협치의 손을 내밀었”으나 “야당은 정부조직 개편도 협조해주지 않았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도 예비비 승인을 미루다 겨우 일부 예산만 승인하는 바람에 사무실 공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라는 식이다. ‘협치의 종말’이 야당 때문이라는 묘사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에게 “더 적극적으로 협치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면서 윤 비서관 문제에 대해서도 야당 요구를 들어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윤재순 비서관 문제’가 무엇인지, 그 ‘야당의 요구’가 무엇인지는 단 한 줄도 첨언하지 않았다. 윤재순 비서관을 언급하면서도 ‘성 비위’ 단 3글자도 언급하지 않고 ‘야당이 만든 협치의 걸림돌’ 수준으로만 취급한 사설로서 권력층 성 비위 이슈에 대한 바람직한 논평이라 보기 어렵다. 이 사례 외에도 서울신문 <사설/ 尹, 야당 협치 위해 인사 논란 속히 정리하길>(5/17) 등 비슷한 취지의 사설들이 지배적이다.
불필요한 인용 보도로 성 비위 당사자를 두둔한 사례
과도한 인용 보도로 인한 문제 사례 중에는 굳이 보도하지 않아도 될 내용을 부각하여 성 비위 당사자를 결과적으로 두둔하는 보도도 있었다. 동아일보 <‘진보성향’ 류근 시인이 본 윤재순 詩 “성추행 옹호 아냐”>(5/16) 등 다른 시인의 입장을 받아쓴 사례들이다. 이 보도는 이미 제목부터 ‘진보성향 시인도 윤재순 비서관의 시가 성추행 옹호는 아니라고 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보도 본문에서도 동아일보는 “진보적 성향을 드러내 온 류근 시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단순히 두둔하는 입장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이념적인 갈라치기를 끼워넣어 ‘진보적인 사람도 보수정부 성 비위에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그만 얘기하라’는 식의 메시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이는 권력층의 성 인식 왜곡, 성 비위 문제에 대한 건강한 논의를 가로막는 방식이다. 보도 내용은 5월 15일 윤재순 비서관이 쓴 시에 대한 류근 시인의 평가를 인용한 것으로 채워졌다. “‘성추행 옹호 시’라고 보이지 않는다”, “이 시는 실패한 고발시, 실패한 풍자시, 실패한 비판시일 수는 있어도 ‘성추행 옹호시’라고 보이지 않는다”, “흐름과 맥락을 보면 오히려 지하철 안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무례와 남성들의 성추행 장면을 드러내어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노인들과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뭔가 비판하고 고발하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나름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풍자의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이 시를 비판하려면 차라리 시적 미숙함과 비좁은 세계관, 구태의연하고 졸렬한 표현과 묘사를 지적해야 한다”면서 “시의 완성도 측면에서 함량 미달처럼 보인다. 서툴고 유치하고 습작생 수준의 치기에 머물고 있다”라는 류근 시인의 평가다. 물론 시인의 평가를 인용할 수는 있으나 문학의 특성상 그 평가와 해석은 다양할 수밖에 없으므로 인용하고자 한다면 되도록 다양한 입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석 기간 중 ‘윤재순 성 비위’와 ‘류근’을 동시언급한 기사가 7건인 반면, “잠재적 성 범죄자 특성이 보인다”며 똑같은 윤 비서관 시를 두고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를 내린 최영미 시인의 경우 3건에서만 인용됐다. 더구나 이외 다른 ‘시인’의 입장을 인용한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본질 외면
정치권 성 비위 논란을 여야 간 공방과 정략적 의미로 소비하는 언론 보도의 지배적 양상에서 권력층 성 비위의 본래 쟁점들은 은폐될 수밖에 없다. 앞서 살펴봤듯이 성평등, 성인지 감수성, ‘권력형 성범죄’ 차원에서 접근한 보도들을 찾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과 옹호하는 입장을 거의 같은 비중으로 보도해주는 기현상도 나타난다. 이런 경향이 유난히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가 있는데 5월 17일 국회 운영위원회였다. 이날 하루 ‘윤재순’ 언급 보도는 183건으로 급증했는데 이중 파문을 일으킨 윤재순 비서관의 ‘뽀뽀’ 발언은 은 35건에서만 언급됐다. ‘뽀뽀’ 발언이란 윤재순 비서관이 “그날 공교롭게도 제 생일이었고 직원들이 10여 명 남짓인데, 그때 소위 말하는 생일빵이라는 것을 처음 제가 당해봤다”,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초콜릿케이크가 얼굴에 뒤범벅이 됐다. 그래서 ‘그럼 생일(선물) 뭐 해 줄까?’ 그래서 제가 정말 이 말씀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해야 하는지 또 다른 불씨가 되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만, ‘뭐 해 줄까?’ 그래서 ‘뽀뽀해 주라’라고 화가 나서 했던 말은 맞다”, “그래서 볼에다 하고 갔던 것” “그런데 그게 마침 제가 어떤 성추행을 했다 라고 해서 그 일로 그 당시에 제가 조사를 받은 것도 아니고, 저는 저에 대해 그로 인해서 2003년도에 조사가 되는 줄을 몰랐다”는 내용이다.
대통령실 성폭력 예방교육 담당자의 인식을 고스란히 노출한 당사자의 발언임에도 5월 17일 보도 총 183건 중 35건에서만 보도했다는 것은 당일 5건 중 1건에서만 이 발언을 다룬 꼴이다. 오히려 김대기 비서실장과 윤 비서관이 ‘사과’했다는 언급이 113건으로 훨씬 더 많았다. 이는 단순히 옹호하는 발언을 너무 많이 보도했다는 문제를 넘어 심각한 문제점을 외면하는 동시에 심지어는 ‘사과 발언’으로 덮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국민일보 <윤재순 “국민 불쾌감 느꼈다면 사과”…억울함 호소하기도>(5.17)의 경우 윤 비서관의 성 비위로 인한 징계 및 시집에서의 부적절한 표현을 언급하면서도 국회 운영위에서의 윤 비서관의 “일일이 대꾸하면 정말 진흙탕 싸움이 되기 때문에 아무 말씀도 안 드리고 잠자코 있었다”와 같은 ‘사과’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표현했다.
2) 박완주 의원 성 비위 언급 보도 주요 사례
■‘젠더 이슈의 정치화’ 성격이 두드러진 사례
박완주 의원 성비위 사안에 대한 ‘정치화’ 보도 양상은 윤재순 비서관의 경우보다 구체적이며 일률적이다. 구체적 피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8일 만에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는 373건이나 나왔으며 이는 같은 기군 240건이 나온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보다 월등히 많은 양이다.
언론은 ‘박완주 성 비위’ 언급 보도를 133건이나 더 많이 했는데 그 보도량은 고스란히 ‘정치적 보도’로 채워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계일보 <여야 성비위 논란… 이재명 인천 심판론 공격에, 이준석 겨냥 반전 나서>(5/19)와 같이 ‘여야 성비위 논란’을 앞세워 여야 대표 인물들끼리의 언쟁을 중계한 보도들이 지배적이며, 동아일보 <박완주 ‘성 비위 의혹’ 비난 여론 확산 충남 선거 최대 이슈로>(5/19) 한국경제 <박완주 제명에 코로나19 확진까지...악재 겹친 양승조 캠프>(5/17) 등 지방선거 판세의 핵심 요소로 ‘박완주 성 비위’를 지목한 경우가 많다. 일례로 세계일보 <與, 경기 북부 ‘표심 잡기’… 野, 충청권서 ‘민심 구애’>(5/20)는 “민주당 지도부는 중원인 충청권 민심 공략에 나섰다. 민주당은 4년 전 충북·충남·대전·세종 4곳을 모두 석권했지만 최근 박완주 의원(충남 천안을) 성 비위 사건이 터지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 비위 의혹을 민주당 내 갈등 상황에 연결한 보도도 많다. 아시아경제 <'2030 개딸들' 사퇴 요구 집회에 박지현 "정말 개딸인지 궁금">(5/20)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을 지지하는 2030 여성들 모임인 '개딸들(개혁의 딸들)'이 '내부총질만 한다'라며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의 사퇴 집회를 열기로 하자, 박 위원장은 "그게 정말 개딸분들인지 궁금하다"라고 밝혔다”며 박 위원장과 일부 당원들의 갈등을 중계한 사례다. 박지현 당시 공동비대위원장은 민주당 내 성폭력 근절을 앞세워 당 개혁을 위한 인재로 영입된 인물이었다. 박완주 의원 성 비위 의혹에 대한 빠른 사과와 제명 역시 박지현 위원장의 영향이 컸다. 이에 당 내에서는 일부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는데 언론은 이를 적극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 성범죄 심각성을 축소한 사례
국회의원 성 비위 의혹을 정파적 이해관계 속에서만 다루다보니 지나친 이념적 보도 사례도 나왔다. 기자 칼럼인 무등일보 <약수터/보수는 부패로, 진보는···>(5/16)의 경우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해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그리고 16일 제명된 박완주 의원까지 모두 주변 관계자들과 연결된 성 추문, 성 비위로 인해 처벌을 받았거나 직위를 내려놓는 등 큰 파문”이라며 민주당의 성추문을 나열하더니 “박 의원의 제명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불과 2주일여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지방선거까지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평가”, “인간의 3대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하지만 같은 당에서 똑같은 추문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건 무언가 분명 잘못됐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다가 우리가 아는 격언도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성 추문으로 망한다'는 말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결론지었다. 박완주 의원 성 비위 의혹을 지방선거 판세의 요소나 ‘진보 정치세력이 망하는 이유’, 즉 대단히 제한적인 정치적 의미로 규정했는데 이보다 더 심각한 건 ‘권력형 성범죄 의혹’을 ‘식욕, 수면욕, 성욕 등 인간의 3대 욕구’에 비유한 대목이다. 성범죄를 타고난 사람의 자연스러운 욕구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③ 당사자 입장의 무비판적 인용
박완주 의원 성 비위 의혹의 경우 피해자 보호를 위해 구체적 사실관계를 공표하지 않았는데 이로인해 비판적 논조의 보도의 대부분은 ‘비판적 발언’을 인용하는 수준에 그쳤다. 민주당의 국회 윤리특위 제소나 피해자의 고소 역시 단순 전달에 그쳤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 <민주, 성 비위 의혹 박완주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5/17)는 “민주당에 따르면 박 의원은 지난해 말 보좌관 관련 성비위 사건이 발생했으며, 올해 4월 관련 사실이 당 젠더신고센터에 보고됐다”, “피해자 측은 박 의원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전날 경찰에 고소했다”라고만 전했다. 국회 차원의 징계를 위한 제소, 피해자의 고소까지 함께 언급하면서 비판적 논평 한 마디가 없다. 대부분의 보도가 이런 식인데 구체적 피해사실이 없더라도 국회에서의 징계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상황에는 충분히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박완주 의원 본인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쓴 부분도 아쉽다. ‘옹호’하는 논조의 보도가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에 비해 확연히 적기는 하지만 자신의 성 비위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사과보다는 ‘사실관계 다툼’에 방점을 두며 ‘적극적인 부인’을 앞세운 박 의원 입장에는 평가나 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앙일보 <"아닌 건 아니다" 성추문 의혹에 제명된 박완주가 돌린 문자>(5/15)의 경우 “어떠한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박 의원 입장을 인용하면서 “당 안팎 사정을 고려, 제명 결정은 어쩔 수 없이 수용하지만 성 비위 의혹의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라고만 해석했다. 이렇게 박 의원 입장을 그대로 받아쓴 수준의 보도가 총 14건이었다.
4. 결론
정치권 성 비위 논란에 대한 언론의 태도는 오랜 기간 개선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처럼 애초에 사안 자체를 보도하지 않거나 권력자의 목소리만 받아쓰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람직한 보도 양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권의 성 비위 의혹을 대부분의 보도가 선거의 승부를 가를 요소나 정치권 공방전의 하나로만 다뤘기 때문이다. 이렇나 전반적인 보도 양상은 기득권의 성 비위 또는 성 인식의 문제를 희화화하고 축소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럴 수도 있다’ ‘원래 그렇다’라고 느끼게 할 위험이 크다. 결과적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범죄일 수 있는 ‘권력형 성범죄’, ‘권력층의 성차별적 인식’을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윤재순 비서관 및 박완주 의원의 성 비위 의혹에 언론은 기본적으로 적극성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지만 사태가 알려진 초기에는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2차 가해 정황’을 파헤친 보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박완주 의원 사태와 같이 구체적인 피해 사실, 즉 자극적인 성범죄의 상세한 내용을 말할 수 없는 경우 어떻게 보도해야하는지, 아직 언론은 답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 내용이 있는 ‘윤재순 성 비위’ 언급 보도보다도 보도량이 훨씬 많았지만 정작 ‘권력형 성범죄’ ‘성평등’ ‘성차별’ 차원의 본질적 접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행히 여기에도 모범답안은 있다. 세계일보 [[기자가만난세상] 권력형성범죄, 여야 전수조사를]5.16은 훌륭한 사례다. 세계일보는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 의원실 보좌진 A씨에게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외에도 ‘공개하기 민망한 성희롱성 발언’들과 더 큰 성적 비위들에 대한 제보가 있다고 한다. 박 의원이 사건 발생 후 ‘대리 서명’ 한 사직서로 A씨를 의원면직(강제해고) 하려 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금전 합의로 사건 무마를 시도했다는 보도도 있다”며 단 4문장으로 당시까지 알려진 의혹 내용 모두를 집약했다. 이어서 “2018년과 2020년에 불거진 안희정·박원순·오거돈의 ‘권력형 성범죄’”를 거론하고는 “권력형 성범죄는 폐쇄적인 조직의 권력자가 ‘위력’을 이용해 위계상 약자에게 가하는 성적인 폭력” “위력은 조직이 폐쇄적일수록, 권력이 견제받지 않을수록, 위계질서가 수직적일수록 강하게 작동” “지방자치단체장의 성범죄는 상급기관의 부재와 측근세력의 비호 속에서 가능” 등 ‘권력형 성범죄’의 주요 특징과 양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결론은 “박 의원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그 자체로 헌법기관인 의원은 정기적으로 관리·감독을 받는 상급기관이 없”고 “불체포특권이 있어서 체포당할 일도 거의 없”으며 “보좌진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표현된”다는 의원과 보좌진의 관계상 국회의원실도 ‘권력형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일보는 여야 모두에게 “성범죄 피해를 정쟁의 수단으로만 삼”지 말고 ‘여야 전수조사’ 등 “진정성을 보일 때”라고 일침을 놓았다. 이 일침은 비단 여야 정치권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이런 보도보다는 정치권 공방이나 지방선거 판세 보도에 성 비위 의혹을 많이 인용한 세계일보 스스로도 경청할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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